[영화 리뷰] 심장 드러내며 부활한 'SF 챔피언'

졸전으로 체면을 구겼던 왕년의 SF 월드컵 챔피언이 부활했다. 무엇보다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여성 레이(레이지 리들리)와 흑인 핀(존 보예가) 등 신예를 투톱 공격수로 과감하게 기용했고 어두운 악역 렌(애덤 드라이버)도 꽤 견고하다. 신구(新舊) 조화 또한 수준급. 한 솔로(해리슨 포드)와 츄바카, 레아 공주(캐리 피셔) 등 와일드카드로 구축한 수비 라인이 믿음직스럽다. 축구공을 빼닮은 로봇 BB-8은 가장 바삐 움직이면서 중원을 장악했다.

17일 개봉한 SF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감독 JJ 에이브럼스)는 이 시리즈의 흑역사를 끝냈다. 1977년 '스타워즈 에피소드4―새로운 희망'으로 출발한 오리지널 3부작(에피소드 4~6편)의 완성도에 비해 바닥 모르고 추락한 3부작(1~3편)에서 벗어나며 의미 있는 느낌표를 쾅 찍었다. 얼룩과 불신을 상당 부분 지워낸 셈이다. 할리우드를 비롯해 동서양을 아우르며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불 꺼진 극장에 "오래전 멀고 먼 은하계에…"라는 자막이 올라오고 귀에 익은 음악(존 윌리엄스)이 흘러나올 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영화는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의 실종으로 열린다. '퍼스트 오더'로 명명된 어둠의 세력과 레아가 이끄는 저항군은 그를 찾느라 혈안이 돼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는 사막 행성 자쿠. 추락한 우주선에서 쓸 만한 부품을 찾아 파는 청소부 레이가 비밀 지도를 지닌 로봇 BB-8을 발견한다.

'스타트렉'을 성공시킨 JJ 에이브럼스 감독은 10년을 기다린 '스타워즈' 팬에게 이 시리즈의 심장을 보여주면서 솜씨를 증명했다. 빛과 어둠, 선과 악의 우주적 대결이라는 짜임새는 그대로다. 규모가 클수록 인간미가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새로운 인물인 레이와 핀, 렌이 모두 관객을 사로잡는다. 개막 앞두고 백스테이지에서 대사를 중얼거리며 서성이는 배우들처럼 마음속 불안과 소용돌이가 잘 보인다. 레이는 오지 않을 가족을 기다리고 있고, 핀은 스톰트루퍼(어둠의 병사)로 길러졌다가 저항군 편에 선다. 렌은 가계(家系) 때문에 흥미로운 부피감이 있다. "내가 니 애비다"의 다스 베이더만 한 포스를 발휘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또 다른 막장 드라마가 숨어 있다.

어느 쪽이 이길지 뻔한 이 영화에는 올드팬이 좋아할 만한 장면이 여럿 있다. 솔로와 츄바카가 화물선 밀레니엄 팔콘과 재회하는 대목, 해골처럼 일그러진 다스 베이더의 가면, 저항군 전투기 '엑스 윙'과 제국군 측 '타이 파이터'의 공중전, 임무를 완수하는 대폭발의 스펙터클, 360도 회전하면서 스카이워커를 보여주는 엔딩…. 하지만 하나를 꼽으라면 숲에서 레이와 렌이 벌이는 광선검 결투다. 선과 악을 상징하는 두 빛깔의 광선검이 뜨겁게 부딪치는데 펑펑 눈발이 쏟아진다. JJ 에이브럼스 감독은 매우 냉정하고 고요하게 이 명장면을 빚어냈다.

새로운 3부작의 첫 편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우주에서 펼쳐지는 희랍비극 같다. 복잡한 가계와 신탁, 영웅과 추락이 다 들어 있다. 장면과 장면 사이 이음매는 매끄럽고 리듬감이 좋다. 관객은 시원하게 한 골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