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에… 정유·화학 오르고 조선 떨어져

국제유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유와 화학, 조선회사들의 주가가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거 정유와 화학 회사는 국제유가가 떨어질 때 주가가 약세를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유가가 하락하면 원유 재고 손실이 커지고, 기름 값이 더 내릴 것이라는 우려에 석유제품 수요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조선업체도 유가가 하락하면 주요 사업인 해양플랜트의 실적 악화 가능성이 커져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최근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까지 떨어진 이후 정유·화학 회사의 주가는 오히려 크게 오르고 있다. 원유 수입비용이 감소한 데다, 낮은 가격에 석유제품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실적 개선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업종은 저유가 시대가 오랜 기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에 해양플랜트 수주가 끊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주가가 계속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에도 정유·화학주 강세

지난 9월 이후 약 두 달간 배럴당 45달러 선을 유지하던 국제유가는 11월부터 빠르게 하락했다. 18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배럴당 34.73달러를 기록, 11월 이후 25.5% 하락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현재 산유량을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한 데다, 지난 15일 미국이 자국산 원유수출 금지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해 원유 공급과잉 우려가 커지며 유가가 크게 내린 것이다.

같은 기간 국내 정유·화학 업체들의 주가는 강세를 보였다. S-Oil은 11월 이후 14.3% 상승했고, SK이노베이션도 12.2% 올랐다. 화학업종의 한화케미칼과 LG화학도 각각 24.5%, 9% 뛰었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의 원유 수출은 국내 정유·화학업체들에 호재가 될 것"이라며 "세계 원유 공급량이 증가해 국내 업체들의 원유 수입비용이 줄어들고, 미국 정유사들의 가격 경쟁력이 감소해 석유제품 수출이 늘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유가가 올 초에 비해 절반 수준까지 하락해 더 이상 크게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원유 재고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줄어든 점도 국내 정유·화학업체 주가 강세의 이유로 꼽힌다.

◇해양플랜트 실적 악화 우려에 조선사 주가는 부진

이에 비해 조선사들의 주가는 계속 약세를 보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11월 이후 25.1% 하락했고, 삼성중공업도 20.3%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해양플랜트 사업의 비중이 적은 현대중공업도 같은 기간 6.3% 하락했다.

올해 국제유가가 계속 약세를 보이면서 국내 조선사들의 해양플랜트 사업 실적이 계속 악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단 2건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데 그쳤다.

유재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유가가 더 크게 하락해 해양플랜트 수주가 아예 끊길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내년에 유가 상승으로 해양자원개발 수요가 살아나지 못할 경우 조선사들의 실적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유가 반등" 전망도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선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고 안정적인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한다. 중동 석유 수출국들의 공급이 지속되는 가운데 올해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이 원유 수출에 나서면서 공급량이 계속 늘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정유와 화학업체들은 실적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반면 조선업종은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원유 가격이 점차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천원창 신영증권 연구원은 "원유 전체 수요에서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며 "미국의 제조업 경기 회복으로 원유 수요가 크게 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