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투쟁으로 지켜낸 배움의 魂

올바른 한·일(韓日) 관계사 교육을 위해 초·중·고 교사 300명이 일본을 답사하는 '일본 속의 한민족사(韓民族史) 탐방'. 참가 교사들이 18일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70년 역사의 일본 오사카 한국인 학교인 '건국(建國)학교'였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420명이 재학하는 이 학교는 1946년 설립됐다. 교사(校舍)에 들어서자 이광형(71) 교장은 대뜸 1958년 중학교 학적부를 펼쳐보였다. "우리 학교 졸업생 중에는 유독 개명(改名)하신 분이 많습니다. 그 이유를 짐작하시겠어요?"

실제 학적부에는 졸업생들이 "법원에서 개명 허가를 받았다"면서 "학적부의 내 이름도 고쳐달라"고 적어 보낸 한글 편지가 많았다. 이 교장은 "이들은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와 남의 이름으로 살다가 예순이 넘어서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뒤 학교에 그 사실을 알려온 것"이라며 "우리 학교의 역사에는 '슬픈 현대사'가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졸업생 중에는 밀항을 시도하다가 검거된 재일교포를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가뒀던 오무라 수용소 출신도 적지 않다. 감금과 추방에도 거듭 밀항을 시도할 만큼 절박한 처지였다는 뜻이다.

이 학교는 광복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 남아 있던 재일교포 자녀들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됐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중앙단장을 지낸 재일교포 사업가 조규훈(1906~2000)이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하지만 1948년 일본 정부는 '한국인의 자체적인 교육 기관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다. 오사카·고베에서 재일교포 1만여 명이 일본 정부의 학교 폐쇄령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신(阪神) 교육 투쟁'으로 불리는 시위 당시에 일본 경찰의 발포로 중학생 소년 1명이 숨지고 23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교장은 "우리 학교는 재일교포의 투쟁으로 지켜낸 곳"이라고 했다. 역경을 뚫고 탄생한 이 학교는 예체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54~1956년에는 전국 고교 하키 선수권대회에서 3연패를 거뒀다. 1958년에는 도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동메달을 땄다. 사물놀이는 이 학교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동아리 활동이다. 학교 사물놀이팀은 일본 전국 고교 종합 문화제의 향토 예능 부문에 11년 연속 오사카 대표로 출전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 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에서도 대통령상(2007년)과 국회의장상(2015년)을 받았다. 학기 말 시험 기간이었지만 학생들은 한국 교사들 앞에서 20여분 가까이 사물놀이를 선보였다. 사물놀이와 버나 돌리기, 상모돌리기를 결합한 역동적이고 활력 있는 실연(實演)에 교사들은 박수를 멈추지 못했다.

사물놀이팀의 장수경(18)양은 "한국의 소리를 통해 하나 되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6년간 사물놀이를 배운 그는 내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이 학교 재학생들은 올해 한국 대입 시험에서 서울대(1명), 연세대·고려대(각 3명), 성균관대(4명) 등에 합격했다. 해외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에도 55명이 합격할 만큼 한국어와 역사 교육에 비중을 둔다. 구남중학교 박경순 교사는 "오사카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렇게 멋지게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울컥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올해 36회를 맞은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은 조선일보·신한은행·포스코가 주최하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이 후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