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22 16:00

[시니어 에세이] 추억의 김장 담그기
▲사진=조선일보DB

시골 처가에선 매년 11월이면 어김없이 치러지는 행사가 있다. 바로 김장 담그기다. 요즘처럼 편리한 세상에는 김장김치도 얼마든지 사 먹을 수가 있다. 굳이 번거롭고 어렵게 김장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옛날 부모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야말로 그 어떤 보약을 먹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요즘 세상은 음식마저도 제대로 믿고 먹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간혹 매스컴을 통해 대형식당이나 음식 재료 업자들이 하는 형태를 보면 음식을 도저히 사 먹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장 김치 또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김장 김치에 들어가는 고춧가루만 해도 그렇다. 빛깔을 좋게 해서 좋은 가격을 받으려 인체에 해로운 약품을 사용하는 예도 종종 TV에서 볼 수 있다.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이 이렇게 상인들의 농간으로 내 가족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차마 바깥 음식은 입에도 되기 싫다.

반면에 시골에서 담그는 김장 김치는 그야말로 100% 무공해 재료를 가지고 김치를 담근다. 이런 점에서 처가에서 담그는 김치는 그 어떤 보약보다도 건강에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소 미안한 감은 있지만 매년 시골 어르신들이 김장을 했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해 본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아니 요즈음에도 시골에서 품앗이 형태로 김치를 담그곤 한다.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한집에서 김장하게 되면 이웃집에서도 같이 힘을 모아 김장을 하게 된다. 김장하는 것은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한두 사람이 하기에는 버거운 일이다 보니 이렇게 여러 사람이 어울려 같이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웃과 이런 저런 얘기도 주고받으면서 정분도 쌓고 김장도 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도 볼 수 있다.

시골 처가의 경우 6남매가 직장 따라 모두 타지에서 터를 잡고 살지만 이렇게 김장하는 날에는 다 같이 모이곤 한다. 구정, 추석 명절 외 어느 정도 가족이 모일 수 있는 행사가 이 김장하기다. 여러 도시에서 터를 잡고 살면서 이런 날을 계기로 다 같이 한자리에 모여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김장 담그기 이상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요즘같이 매우 급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잠깐 멈추어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 같다. 김장 담그기의 백미는 금방 담은 김장김치를 손으로 좍 좍 찢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위에 척 걸쳐서 한입에 쏙 먹는 그 맛. 그 맛은 1년 중 먹는 그 어떤 식사보다도 맛있고 그해 식사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거기에 갓 삶은 돼지 수육과 막걸리가 더해진다면 그 맛이란 그 어떤 백만장자 억만장자의 식사보다도 더 값어치 있고 맛있는 식사라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2,30대 혹은 3,40대 젊은이들은 별거 아닌 김치를 가지고 뭐 요란스럽게 표현을 하느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다. 김치 말고도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들이 있는데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세대이건간 그 세대에서 느끼는 그 세대만의 아련한 추억이 있다. 그 추억은 그 세대가 걸어왔던 당시의 삶을 표현해 준다. 겨우 입에 풀칠하는 것도 힘든 세월을 겪어 왔던  6,70대 분들에겐 김치를 담그고 그것을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라 생각한다.

6,70대 세대가 저물고 그 아래 세대 사람들이 6,70대가 되면 이런 추억도 없어지리라 본다. 그러나 어느 세대의 추억이건 그 추억은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