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산타] 평균 69세… 고장난 장난감들의 '슈바이처'

23일 오후 2시, 인천 남구 관교동의 한 다세대주택 2층이 조그만 장난감들이 내는 음악 소리로 시끄러웠다. "안녕하세요. 저는 뽀로로입니다." 책상에 앉은 한 노인이 고치던 장난감을 누르자 익살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노인들은 한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고 납땜을 하며 장난감을 수리했다. 고장 난 장난감이 다시 소리를 낼 때는 "드디어 고쳤어"하고 함성을 올렸다. 장난감을 들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이들의 책상에는 '신소재 공학' '탄소강 열처리' 같은 전문 도서들이 가득했다.

장난감과 공학 교재가 공존하는 이곳은 무료 장난감 수리소 '키니스 장난감병원'이다. 고장 나고 병든 장난감을 무료로 진료하고 고쳐주는 '의사'는 할아버지 자원봉사자 6명이다. '막내' 박종태씨가 66세, '맏형' 김영봉씨가 70세이고. 김종일·김기성·하영선·김경래씨 등 4명은 69세 동갑내기다.

이 장난감병원은 2011년 문을 열었다. 인하공업전문대학에서 학장까지 지내고 정년 퇴임한 김종일씨가 후배 교수로부터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 수리 봉사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마침 김씨도 은퇴 후 사회봉사를 하고 싶었던 차였다. 김씨는 "일본에서 유학할 때 장난감 수리소가 있는 게 인상 깊었다"며 "기술을 가진 노인들이 모여 아이들의 동심(童心)을 지켜주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의 이런 뜻에 공대 교수, 공고 교장, 전자 업체 기술자 등으로 현역 시절을 보낸 대학·고교 동기 4명과 동네 후배 1명이 동참했다.

키니스 장난감병원은 어린이들이 택배로 보내온 장난감을 고쳐서 택배로 다시 보내주는 식으로 운영된다. 수리 성공률은 70% 정도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전기드릴, 그라인더 같은 비싼 공구들도 구입했다. 공고 교장 출신인 김경래씨는 "주로 인터넷으로 수리를 의뢰받고 택배로 장난감을 받아 수리해 보내주니 기뻐하는 아이들을 볼 수 없는 게 아쉽지만 아이들 몰래 밤새 선물을 놓고 가는 '산타'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엄마들 사이에 '어르신들이 장난감을 잘 고친다'는 소문이 나면서 수리 요청도 부쩍 늘었다. 올해만 장난감 3000여 개를 고쳤다고 한다. 출퇴근은 자유지만 할아버지들은 매일 출근한다. 공대 교수로 정년퇴직한 하영선씨는 "날이 궂을 때는 하루 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장난감을 돌려받을 날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집에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전자 업체에서 텔레비전을 만들었던 박종태씨는 "멀쩡한 장난감도 싫증 나면 버리는 시절이지만, 장난감을 살 형편이 안 돼 물려 쓰는 집도 적지 않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더 빨리 고쳐주고 싶다"고 했다.

부품값 등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은 받지 않는다. 수명을 다한 장난감 부품을 재활용해 부품값을 아끼고 필요하면 사비를 털어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가끔 후원금도 들어온다. 전기공학과 교수로 퇴임한 김영봉씨는 "장난감을 무료로 고쳐 받은 아이 부모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보내준다"고 말했다.

조선공학과 교수 출신인 김기성씨는 "평생 커다란 배만 연구하다 조그만 장난감을 고치니 처음엔 적응이 잘 안 됐다"며 "하지만 내 손자 장난감이라 생각하고 어떻게든 연구하다 보니 이제는 능숙해졌다"고 했다. 김종일씨는 아들이 어릴 때 혼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장난감을 사준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런 김씨는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내 것'으로 애착을 갖게 되는 물건"이라며 "아들에게 못다 했던 '동심 수리공' 역할을 하게 돼 뿌듯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