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다니스 타노비치’가 만든 ‘노 맨스 랜드’라는 영화가 있었다. 포스터를 보면 코미디 영화로 자칫 오해할 수 있는 영화지만 90년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간의 내전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노 맨스 랜드’란 아무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경계 지역이다. 우리의 비무장 지대와 같다고나 할까?
이 영화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군인들이 '모스타르 다리' 그 경계지역에서 벌어지는 잔혹성을 그리겠다고 만든 영화였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감독은 포스터를 코믹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그 포스터 덕분에 영화는 흥행에 참혹한 실패를 하고 기억 속에 사라져 갔다. 그 보스니아를 갔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고는 보스니아의 수도는 우리나라 탁구선수들이 1973년 4월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승전보를 보내온 사라예보다. 그 당시에는 유고연방이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참혹한 내전이 한창일 때 뉴스에서 세르비아가 이 도시 전체를 포위하고 ‘인종청소’를 시도했다고 하는 살벌한 뉴스를 접한 게 고작인 나라였다.
많은 젊은이가 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종교전쟁으로 인해 쓰러져간 그 보스니아에 모스타르가 있다. 모스타르를 번역하면 ‘오래된 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그 다리를 보기 위해 구불구불한 산길을 가고 있다. 지중해의 빛깔인 주홍색 지붕이 회색빛 지붕과 나란히 어울려 알바니아나 몬테네그로와는 또 다른 고즈넉한 풍경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허나 그것도 순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전의 상흔이 아직 그대로 남아 군데군데 벽이며 문짝이며 총탄 자국이 슬픔을 간직한 채 이방인을 맞고 있었다.
누군가 이왕이면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를 볼 것이지 산길을 돌아 돌아 시골 돌다리를 보러 가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스타르 다리만큼 그 나라의 역사를 대변하는 다리가 어디 흔하겠는가. 1566년에 지어진 아치형의 돌다리는 에메랄드빛 네레트바 강(지금은 드라니강이라 부르기도 함)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다리다. 다리가 놓일 당시엔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한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파괴되었다가 강물에 떨어진 돌다리 조각들을 주워 올려 다시 2004년에 복구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이 되었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니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는 다리이다.
‘드리나 강의 다리’라는 소설이 있다. 작가는 유고슬로바키아의 사람 ‘이보 안드리치’가 쓴 소설이다. 소설이라지만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같이 역사를 적어 내려간 소설이다. 드리나 강 중류에 있는 작은 도시 비셰그라드의 다사다난한 역사를 이 강에 놓여있는 다리가 주인공이 되어 보고 들은 것을 써 내려간 역사 소설이다. 다리가 세워진 1516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다리가 폭파될 때까지 400여 년간에 걸쳐서 서술해 놓은 3부작 소설로 196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자칭 문학소녀라고 자처한 나지만 그래서 어려서부터 책이란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이 책은 읽은 적이 없다. 그러니 책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했던 내 생각이 부끄러워진다.
드리나 강에 놓여있는 모스타르 다리를 경계선으로 한편에는 터키계의 이슬람교도들이, 그 반대편에는 그리스정교회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드리나 강은 오랫동안 서로 단절되어 살았다. 그러다가 드라니 강에 모스타르 다리가 놓이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다리는 강 양편 마을 주민들의 이질적인 문화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톡톡히 하며 서로 어울려 잘 살았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인 갈등으로 인한 분쟁이 끝없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 400년의 역사를 작가는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에 담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