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겨울은 혹독하다. 눈은 예측할 겨를도 없이 쏟아진다. 어느 날 출근길,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가차 없이 쌓였다. 어떤 언덕에서도 주춤거리고 싶지 않다면, 조금 더 안정적으로 겨울을 나고 싶다면 이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뉴 아우디 TTS
자동차가 내 몸처럼 움직일 때의 쾌감을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면, 그 감각은 운전 재미를 가름하는 어떤 기준이 될 것이다. 아우디 TTS를 운전하는 내내 ‘쾌할 쾌快’ 한 글자가 생각났다. 북악 스카이웨이 언덕길을 공략할 때마다 가슴이 떨리도록 상쾌했고, 쭉 뻗은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달릴땐 매캐한 가슴이 다 뚫리도록 통쾌했다. 2.0리터 직렬 4기통 직분사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310마력, 최대토크 38.8kg·m을 낸다.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4.7초다. 센터페시아에는 그 흔한 모니터가 없다. 대신 운전석 계기판을 거대한 모니터로 쓰고, 버추얼 콕핏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른 여느 차처럼 속도계와 엔진 회전수를 위주로 볼 수도, 계기판 전체를 거대한 내비게이션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다분히 미래적이고 그 자체로 흥미롭다. 탄생부터 아이콘의 지위를 획득한 디자인은 이번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누구도 배신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호기심과 소유욕만 자극하고 나섰다. 여기에 아우디 사륜구동 시스템 콰트로까지 적용했으니, TTS의 재미를 느끼는 데 계절을 가릴 이유도 없을 것이다. 7천8백90만원.
2016 혼다 파일럿
언뜻 심심해 보일 수도 있다. 여느 독일 브랜드의 화려한 SUV에 비해 눈에 띄는 일이 적을 수도 있다. 덩치는 큰데 수수하고 담백하기까지 해서, 그저 넉넉한 SUV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대의 사륜구동 SUV를 끌고 대관령 빙판길을 올라야 하는 상황에서, 사심 없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차는 거의 혼다 파일럿뿐이던 겨울을 똑똑히 기억한다. 우직한 뚝심과 기계적인 믿음, 여기에 광활하기까지 한 공간감까지. 3471cc V6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최고출력은 280마력, 최대토크는 36.2kg·m이다. 8명까지 탈 수 있는 대형 SUV의 실내에는 거의 모든 촬영 장비를 싣고 있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영동 고속도로에서는 폭설을 만났는데, 멀쩡히 직진하던 어떤 세단의 꽁무니가 힘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혼다 파일럿은 묵묵히 갈 길을 갔다. 그날 이후 파일럿을 의심한 적이 없다. 진짜 실용적인 차는 혼다가 잘 만들고, 그걸 아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지금 계약해도 내년 3월에나 받을 수 있다. 5천3백90만원.
볼보 크로스 컨트리(V60)
볼보는 ‘크로스 컨트리’라는 이름으로 장르 확장에 나섰다. 볼보 크로스컨트리는 왜건과 SUV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활용성과 편의성을 극대화한 모델이다. 크로스 컨트리(V60)는 정말 잘 만든 볼보 전통의 왜건 V60을 기반으로 차고를 6.5센티미터 높였다. 하지만 SUV보다는 낮다. 볼보의 간판 SUV XC60과 비교하면 1.7센티미터 낮다. 왜건의 공간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SUV보다는 낮은 차체를 통해 무게중심을 낮춘 셈이다. 2401cc 직렬 5기통 트윈터보 엔진의 최고출력은 190마력, 최대토크는 42.8kg·m이다. 평소에는 앞바퀴에 100퍼센트의 힘을 보내다가 어느 한 바퀴라도 접지력을 잃을 땐 뒷바퀴에도 50퍼센트까지 구동력을 나눠주는 방식의 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했다. 5천5백50만원.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4.4 SDV8
SUV를 염두에 두고 최고에 최고를 쫓다 보면 두 대의 자동차를 만나게 된다.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둘 중 어느 한쪽이 더 출중한가를 가리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품위와 호사를 기준 삼아 어느 한쪽의 우위를 가름하는 일도 부질없다. 둘을 가르는 기준은 오로지 취향일 텐데, 레인지로버에는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영국 귀족풍의 격식과 품위가 있다. 품위 있는 인테리어와 안락한 운전 감각은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가리지도 않는다. 4367cc V8 트윈터보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339마력, 최대토크 71.4kg·m을 낸다.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는 별명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어떤 길을 달릴 때도 조용한 호수 위에 가만히 떠 있는 것 같은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1억 7천1백60만대 부터.
BMW 750Li xDrive
BMW가 출시한 모든 차의 꼭대기에 750Li xDrive가 있다. 거의 모든 것의 극단에 있다는 뜻이다. 극단의 호화로움, 극단의 성능, 극단의 안정성, 극단의 쾌락과 권위…. 4395cc V8 직분사 트윈 터보 엔진의 최고 출력은 자그마치 450마력이다. 최대토크는 66.3kg·m이다.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5초다. 과연 한 브랜드를 대표하는 기함의 성능이다. 실내는 극단적으로 안락하다. 바깥에서 나는 어떤 소리도 안으로 파고들 틈이 없다. 대신 바우어 앤 윌킨스 오디오시스템이 내는 음악 소리가 명료하다. 여기에 이 듬직한 엔진이야 말로 팽팽하고 꼿꼿하게 듣기 좋은 소리를 낸다. 가장 호화로운 세단이라고 BMW의 성격이 희미해지는 것도 아니다. 핸들링은 여전히 날카롭고, xDrive는 BMW 사륜구동의 믿음직한 이름이다. 1억8천9백만~1억9천2백만원.
지프 레니게이드 2.0 AWD
누군가는 이 차를 두고 ‘도심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랭글러보다는 부드러워 보이니까. 다른 누군가는 ‘소형’이라는 말에 멈칫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모든 수사는 접어두고, 오로지 지프라는 이름에 대한 신뢰를 기억하는 게 어떨까? 레니게이드는 고유의 험로 주파력과 사륜구동 기술을 그대로 갖춘, 명실상부한 지프다. 크기와 장르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1956cc 직렬 4기통 싱글터보 디젤 엔진의 최고출력은 170마력, 최대토크는 35.7kg·m이다. 눈길과 모래길, 진흙길을 달릴 때는 알아서 최고의 접지력을 확보하는 지형 설정 시스템과 내리막길 주행 제어장치도 갖췄다. 어떤 난이도의 오프로드에서도 물러설 일 없는 진짜 SUV라는 뜻이다. 그러니 겨울이 두려울까? 레니게이드(renegade)는 변절자, 이탈자라는 뜻. 지프가 생전 처음 만든 소형 SUV의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페라리 FF
모든 사륜구동이 SUV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때, 페라리 FF는 가장 극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존재 자체가 비현실적인데, 성능 또한 그렇다. 무려 6262cc에 달하는 V12기통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의 최고출력은 660마력, 최대토크는 69.6kg·m,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3.7초…. 여기에 시속 335킬로미터나 되는 최고속도는 어디서 체험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페라리 중 유일하게 네 명이 탈 수 있고, 편하게 운전하고 싶을 땐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힘과 성능을 제대로 다루는 데는 어느 정도의 능숙함이 필요하겠지만, 든든한 사륜구동 시스템도 적용돼 있다. 이 차를 소유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트랙과 눈밭을 아우를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의 자유일까? FF는 페라리(ferrari) 포(four)를 줄인 말이다. 이름 그대로 사륜구동 페라리라는 뜻. 가격은 4억6천만원.
메르세데스-벤츠 G350 블루텍
육로로 만주까지 달릴 수 있다면, 그럴 때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G클래스는 메르세데스-벤츠가 만드는 모든 SUV의 꼭대기에 있다. G350 블루텍은 2987cc V6 싱글 터보 엔진을 쓴다. 최고출력은 211마력, 최대토크는 55.1kg·m이다. 디자인은 1979년에 1세대 G클래스가 나왔을 때의 요소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공기역학 같은 건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집스러운 직선은 G클래스를 요즘 나오는 다른 모든 차와 단호하게 구분 짓는다. 그 강인함으로부터 이 차의 험로 주파력을 예상할 땐 당신의 모든 상상력을 극대화해도 좋을 것이다. 가격은 1억4천2백만원. 이 차를 바탕으로 만든 고성능 버전, 메르세데스-AMG G63의 가격은 2억20만원이다. 5461cc V8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이 거의 지구의 물리법칙을 다 거스를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