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달러 선박 펀드 조성… 해운업체 빚 줄여야 지원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과잉 투자, 과당 경쟁으로 경영난에 빠진 해운, 조선, 석유화학, 철강, 건설 등 5대 취약 업종에 대해 정부가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했다. "업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촉진한다"고 하지만,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모양새다. 특히, 해운업은 민관 합동으로 12억달러(1조4000억원) 규모의 선박 펀드를 조성해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촉구하기 위해 부채 비율을 400% 이하로 낮춰야만 지원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정부는 30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산업별 구조조정 추진현황과 향후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 경제 둔화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취약 업종의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정부는 금융위원회 주도로 내년 상반기 중에 5대 취약 업종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재벌 등 대기업 계열사 가운데 11곳은 "현재는 정상이나 위기 상황 시 취약 요인이 있어 선제적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날 금융감독원은 금융권 대출·보증이 500억원 이상인 기업 가운데 조선업, 철강업 등에서 19곳을 추가로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대상으로 선정했다.

◇한진해운·현대상선 부채 비율 300% 낮춰야 정부 지원

해운업은 12억달러 선박펀드를 조성해 새로 배를 도입할 때 지원해주기로 했다. 40%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한국자산관리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이 부담하고, 50%는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을 조건으로 민간 금융회사가 참여한다. 나머지 10%는 지원을 받는 해운사가 맡도록 했다. 또 자산 매각 등 자구 노력을 통해 부채 비율을 400% 이하로 떨어뜨려야만 지원 대상이 된다. 양대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채 비율은 700%대여서 자산 매각 등을 통해 한진해운은 8000억원, 현대상선은 6000억원 정도를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이처럼 강도 높은 자구책을 요구하는 것은 채권단의 지원만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2013년 7월 이후 회사채 매입, 만기 연장 등으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두 회사에 2조7000억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글로벌 물동량이 줄어들고, 과당 경쟁으로 운임이 급락하면서 두 회사는 "수익 모델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세계 1위 해운사인 머스크도 지난달 비상경영 방안을 발표하고, 40% 감원에 들어갔다.

◇조선·석유화학·철강·건설 등도 구조조정 가이드라인 제시

석유화학업은 합섬 원료인 테레프탈산(TPA) 공급 과잉에 대처하기 위해 업계가 자율적으로 생산설비 30%(150만t)를 감축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철강업도 합금철 분야의 공급 과잉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능력의 40%(40만t)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재까지 11만t 설비 폐쇄가 진행됐다.

조선업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은 축소하도록 해 '다운사이징(기업 규모 축소)'을 유도한다. 대우조선해양 등 3대 조선사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이 예정대로 진행되도록 하고, STX조선, 성동조선, 대선조선, SPP조선 등은 채권단 관리를 강화키로 했다. 건설업은 부실 업체 실태조사와 부실 업체 조기경보 시스템을 통해 상시 퇴출을 진행하기로 했다. 저가 수주로 부실 건설사가 연명하지 못하도록 내년부터 정부가 발주하는 300억원 이상 공사는 최저가 낙찰제를 폐지하고, 공사 수행 능력 등을 종합 평가하는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