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31 14:42

리뷰 | 영화 더 랍스터

영화 더 랍스터

더 랍스터! 내게는 랍스터에 대한 기억은 어느 날 먹었던 랍스터의 맛으로 “꽃게가 훨씬 감칠맛이 있다.”는 것으로 남겨져 있다. 그런데 랍스터와 사랑이라는 관계설정에 마음이 머물렀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랍스터는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벤 위쇼 출연의 이름만으로도 빛나는 다국적 캐스팅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기묘하고 환상적인 판타지 로맨스라는 포스터에 또 시선이 멈추었다.

가까운 미래, 모든 사람은 서로에게 어울리는 짝을 찾아야 한다.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하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영화는 영상이 아닌 대화로 알려준다. 근시라는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은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메이킹 호텔로 오게 된다. 호텔의 규칙은 정해진 기간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한다. 데이비드는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하여 짝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그 비정상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솔로들의 세계인 숲으로 탈출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커플이 되면 처절한 응징을 받아야 하는 솔로세계에서 자신과 같은 근시가 있는 레이첼 와이즈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고 이를 알게 된 솔로세계의 리더 격인 레아 세이두는 레이첼 와이즈의 두 눈을 멀게 하는 처벌을 한다.

영화는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내면을 영상을 통하여 잔인하게 표현한다. 무엇이지?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영상의 지속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이해의 도수를 높여가지만,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기묘한 환상의 세계에서 스스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몰입하게 한다.

호텔, 도시는 우리가 만나야 하는 미래의 세계로, 숲은 태곳적 자연의 모습을 지니고 인간의 태곳적 제의를 연상시키면서 현실과 가상을 연결하는 상상력으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미래에 긍정적인 사고를 생성시킨다. 알 듯 모를 듯한 영화 속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이라는 거창한 언어는 그 의미의 심도를 높여준다. 목숨을 건 사랑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코믹하게 처리하면서 불가능하다는 부정의 결론을 웃음으로 인식시켜 가다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과연 가능할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관객의 몫으로 남기면서 자막이 화면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영화가 끝나고 객석은 고요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한다.

대담하고 거침없는 마지막 장면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순간의 결론에서 오히려 감정을 극한상황으로 몰아가며 독자에게 결론을 맡기는 현대소설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상식에 허를 찌르는 섬세하고 독특하고 상상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상상력으로 관객에게 그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서 자아, 초자아, 원초자아를 동원하여야 이해가 가능해진다. 사랑의 가장 극대화된 감정의 다양성을 영상이 대신하고 있다. 언어를 절제한 시각적인 형상이다. 사랑이 지닌 원초적 본능을 수학공식을 풀어가듯이 인간의 감정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아를 끌어내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랑인 양성, 이성, 동성 등의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젠더의 개념을 도입시키기도 하면서 슬그머니 그 문제점을 던져주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이 끝난 후 관객을 절정의 감정으로 끌어가서 모두 숨이 멎은 것 같이 미동하지 않는 시간이 지속된다. 어쩌면 관객의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나는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이러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제작하였을까?” 가 질문으로 남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