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콘서트를 가려는데 초등학교 3년생과 5년생 손주들이 난리가 났다.
“할머니 난 쎄시봉 노래를 무척 좋아해요. 나 그대에게 드리리~ 이 노래 이장희 선생님 거죠?”
올여름 미국 다녀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쎄시봉 영화를 보고 완전 팬이 된 아이들이다. 평소에도 노래를 즐겨 부르던 한 놈은 음악성이 뛰어나서 음정, 박자 감이 뛰어나고 몇 번 노래를 들으면 거의 외워버린다. 신기하다. 목소리도 타고났는지 발성이 제대로 되는 거 같다. 저 녀석을 보고 있으면 음악적으로 가능성이 있구나! 생각이 든다.
그런데 며느리나 아들은 아이가 그런 쪽에 너무 관심을 둔다고 못마땅해한다. 집에 있을 땐 온종일 제 나이에 걸맞지도 않은 쎄시봉 노래만 부른다니. 이런 노래만 하면 며느리는 머리를 흔든단다. 그만하라고. 난 그래도 좋다. 아들 집에 가면 손주는 할머니를 위해서 마음껏 노래를 부른다.
송창식의 우리는, 가나다라, 왜 불러, 담배 가게 아가씨 그리고 하얀 손수건과 한잔의 추억 등이다. 또 한 놈은 미국 다녀와서 친척들이 주는 용돈을 모아 기타를 샀다. 신통하다. 3달째 학원에 다니며 기타를 배우고 있는데 어려운지 연습도 안 하더니 콘서트 다녀와서 함춘호 선생이 멋있단다. 그러면서 요즘 다시 관심을 두고 연습을 좀 한다. 콘서트에서 멋진 기타 연주를 듣고 자극을 받았나 보다.
참 이 녀석들이 나를 추억 여행을 하게 한다. 그 시절 음악 감상실이 몇 군데 있었다. 난 클래식에 관심이 있어 명동 돌체나 무교동 르네상스 음악 감상실을 가끔 들락거렸다. 좀 논다 하는 친구들은 종로 쪽 쎄시봉을 들락거렸다. 한국 음악계에 포크 열풍을 일으켰던 조영남, 송창식, 이장희, 윤형주, 그때 트윈폴리오의 노래는 얼마나 감미로웠던가.
클래식 음악 감상실에 가면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과 분위기, 사람들도 멋져 보여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처음 듣고 사랑하게 되었다. 손주들이 어느새 자라서 할머니와 같은 공감대를 가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손주들과 난 이렇게 연결고리가 생겼다. 그리고 행복하다. 두 손주를 콘서트장에 들여보내고 난 영상으로 홀에서 구경했다. 아이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줄 수 있어 행복한 것이리라. 손주들도 행복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