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 왕의 얼굴에서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다
입력 : 2016.01.11 03:00 | 수정 : 2016.02.29 14:00
평론가 이주헌이 본 대영박물관展
아이가 해를 그린다 치자. 먼저 동그라미를 그릴 것이다. 동그라미 주위에 직선을 짧게 반복적으로 그음으로써 햇살을 표현할 것이다. 거기서 끝내는 아이도 있겠지만, 동그라미 안에 웃는 눈과 입을 그려 넣는 아이가 많다. 이렇게 해는 순식간에 해님, 곧 사람으로 변한다. 이게 우리가 대상을 이해하는 근원적인 방식이다. 인간의 세계 이해는 본질적으로 인간 이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역으로 인간의 인간 이해 또한 세계 이해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양한 시공간의 사람들이 인간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살펴보면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가 그대로 드러난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대영박물관-영원한 인간'전은 바로 그 사실을 생생히 일깨워주는 전시다.
기원전 5000년경에 만들어진 '할라프 신석기 여인상'을 보자. 가슴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있는 등 여성의 성적 특질이 강조되어 있다. 이 조각을 만든 이에게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생성과 생장의 에너지였을 것이고 세계는 이를 위해 다투는 치열한 생존의 장이었을 것이다. 같은 여성 신체를 표현한 것이라 하더라도 고대 그리스의 조각(로마시대 모각) '아프로디테의 토르소'는 이와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 조각을 만든 이에게 세계는 균형과 조화의 장이고,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궁극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향해 움직인다. 그 집중으로 이뤄진 완벽한 여성의 신체는 아름다움의 총화이자 그 자체로 우주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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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9세기의 '아시리아 왕의 사자 사냥 부조'는 전차를 타고 활을 쏘는 왕과 화살을 맞고 쓰러진 사자의 대비를 통해 세계는 힘과 힘이 충돌하는 곳임을 보여준다. 조각가는, 결연하고 강인한 왕과 신하를 통해 이기는 자가 정의이며 세계를 관통하는 으뜸 법칙은 다름 아닌 약육강식이라고 말한다. 그보다 약 3000년 뒤에 만들어진 중국 조각가 쑤이젠궈의 '원반 던지는 마오'(2012년)도 격렬한 충돌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서양문명과 동양문명이 충돌하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충돌한다.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에게 마오쩌둥이 즐겨 입던 중산복을 입힌 이 조각은, 작가가 속한 사회가 여전히 모순과 긴장으로 안정된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박물관의 명성에 걸맞게 동서고금의 다양한 인물상이 동원된 이번 전시는 그만큼 다양한 세계의 표정을 보여준다.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 블레이크가 말한,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본다"는 시구가 생각나는 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