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中위험·中수익→ 低위험·低수익

증권사들이'중위험·중수익' 투자 상품이라며 내놓던 ELS(주가연계증권)를 최근 '저위험' 상품으로 성격을 바꿔 출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작년 여름과 올해 초 중국 증시 폭락으로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가 손실 위험에 처하자 불안해하는 투자자들을 달래기 위해서다. ELS는 기초자산인 주가지수나 개별 종목 주가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증권사가 처음 제시했던 수익률(연 4~10%)을 돌려주는 금융상품이다.

증권사들은 ELS에서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는 '녹인(Knock-In)' 조건을 대폭 낮추는 방법 등으로 손실 위험을 줄인 ELS 상품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ELS는 보통 녹인 구간에 한 번이라도 진입하면 손실이 날 가능성이 큰데, 아예 녹인 조건을 걸지 않는 '노 녹인' 상품도 대폭 늘었다. 주가가 요동치는 신흥국 주가지수보다는 주가 흐름이 안정적인 선진국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또 조기 상환 요건을 낮추거나 기초자산 개수를 하나로 줄인 ELS도 인기를 끌고 있다.

◇원금 손실 위험 줄인 ELS 잇달아 나와

저위험 ELS가 늘어난 것은 투자자들의 원금 보전 욕구 때문이다. 작년 6월 중국발 쇼크로 글로벌 주식 시장이 침체에 빠지자 ELS 수익률은 무너졌다.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중에는 녹인 구간에 접어든 상품들도 발생했다. H지수를 기초로 한 ELS는 국내 ELS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H지수가 8500선으로 떨어지면서, ELS 120여건이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예상 평가손실액은 500억원을 넘는다.

증권사들은 '안전한' ELS를 찾는 투자자들을 위해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손실 위험을 줄인 저위험 ELS 상품을 꺼내 들었다. 기존 ELS 중에는 기초자산 최초 기준가의 60% 밑으로 떨어지면 녹인이 발동되는 상품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증권사들은 이 조건을 완화해 발행 시점 주가 대비 45% 밑으로 떨어지면 녹인이 발동되는 지수형 ELS를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녹인 조건을 기준가의 35%까지 낮춘 '초(超)저녹인' ELS도 출시했다. 녹인 조건 없이 투자 기간(보통 3년) 중 기초자산 가격이 아무리 떨어져도 만기일에만 최초 기준가의 60% 이상이면 연 6~7% 수익을 지급하는 '노 녹인 상품'들도 시장에 대거 나왔다.

원금보장형 ELS인 ELB(파생결합사채)도 늘었다. 작년 전체 ELS 발행액에서 ELB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반기 14.5%(6조8144억원)에서 하반기 29.7%(8조8492억원)로 늘었다.

◇"저위험 ELS는 퇴보" 지적도

금융시장 일각에선 증권사들이 앞다퉈 저위험 ELS를 내놓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안전하기만 한 ELS는 '중위험·중수익'이라는 ELS 본연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A증권사 대표는 "ELS는 1%대 저금리 시대에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최근 저위험·저수익 ELS가 넘쳐나면서 투자자들의 선택권이 좁아졌다"고 말했다.

보통 ELS가 추구하는 수익률이 7~10%였다면 최근 나온 저녹인·노녹인 상품의 기대 수익률은 4~6% 수준으로 낮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위험도를 낮춘 ELS는 운용상 제약 때문에 기대수익률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투자 상품으로서의 매력도는 크게 떨어지는 셈"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해서 원금 손실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니다. 특히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저녹인·노녹인 ELS라고 할지라도 기초자산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손실이 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중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수익성·안전성을 동시에 원한다면 저녹인·노녹인 상품만 고집하기보다 ELS의 기초자산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 다음, 기초자산 종류와 가입 시기를 나눠서 분할 투자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