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매수수료 없앴는데도… 펀드 투자 제자리

작년 11월부터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앞장서서 펀드 환매 수수료를 폐지하고 있다. 환매 수수료는 공모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일정 기간이 지나기 전에 돈을 빼면 내는 일종의 위약금이다. 보통 가입하고 나서 30일 이내에 환매하면 수익금의 70%, 90일 이내면 수익금의 30%를 떼고 원금과 수익금을 돌려줬다. 그래서 투자자 사이에선 '3개월의 족쇄'란 말이 돌았다.

대형 운용사들이 펀드 환매 수수료를 없앤 것은 작년 10월 금융 당국이 자산운용사에 '환매 수수료를 자율화하라'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입 후 3개월 내에 목표한 수익률을 달성한 투자자들이 환매 수수료 없이 돈을 찾게 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해왔기 때문에 금융 당국의 자율화 요구는 '환매 수수료 폐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기투자'와 '가치투자'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치투자' 진영에서는 '장기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금융 당국이 너무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이라며 환매 수수료를 없애지 않고 있다. 대형사들이 펀드 환매 수수료를 폐지하기 시작한 지 석 달이 다 돼 가지만 아직 펀드 시장에선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어 실효성 없는 조치라는 지적도 있다.

◇환매 수수료 폐지… 장기투자 저해 논란

펀드 환매 수수료는 삼성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미래자산운용 등 대형 3사가 먼저 규모가 큰 일부 펀드의 환매 수수료를 없앴다. 처음엔 채권형 펀드, 인덱스 펀드로 시작해 최근엔 주식형 펀드 환매 수수료를 없애는 분위기다. NH-CA자산운용, 흥국자산운용, 하이자산운용 등 중소 운용사도 잇달아 환매 수수료를 폐지하고 있다.

반면 '가치투자'를 추구하는 신영자산운용, 메리츠자산운용,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등은 펀드 환매 수수료를 폐지하지 않고 있다. 고객이 쉽게 돈을 빼가면 안정적으로 펀드를 운용하기 어렵고 다른 투자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장기투자 문화도 저해한다고 본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환매 수수료를 없애면 고객들이 투자금을 찾고 싶을 때 언제든 뺄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무래도 환매에 대비해서 자금을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펀드 운용이 어려워지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환매 수수료 부담 때문에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신규로 들어와 공모 펀드가 활성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수수료 폐지 효과 아직 안 나타나

펀드 환매 수수료 자율화 이후 석 달 가까이 됐지만 펀드 시장에선 대형사들의 환매 수수료 폐지 영향이 눈에 띄게 나타나지는 않고 않다. 삼성자산운용·미래에셋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 등 대형 3사의 지난해 10월 말 국내 주식형 펀드 자산 총액은 22조415억원이었고, 폐지에 본격적으로 나선 11월 말에는 21조3620억원으로 조금 줄었다. 그렇지만 12월 말에는 다시 21조9113억원으로 늘어났다. 한 대형증권사 펀드 담당자는 "환매 수수료가 폐지되는 펀드도 많이 있지만 여전히 유지되는 펀드가 있어 환매 수수료 폐지 때문에 펀드 투자자들이 늘어났다는 걸 체감하기 어렵다"며 "그렇다고 해서 3개월 미만으로 투자한 후에 투자금을 찾아가는 고객들이 늘어난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아직은 펀드 환매 수수료 폐지의 효과를 논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난해 말 이후 장이 좋지 않아 3개월도 안 돼 목표 수익을 달성하고 빠져나간 투자자들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단기 투자자가 늘어나는지는 증시가 조금 회복돼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축된 공모펀드 시장이 활성화되리라는 기대 역시 하락 장세 때문에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 2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일 59조9000억원이었던 국내 주식형 공모 펀드 자산은 운용사들이 본격적으로 환매 수수료를 폐지한 11월 이후엔 64조원까지 늘었다. 그러나 연초 중국 증시 폭락 등의 영향으로 투자 심리가 악화되면서 지난 25일 61조600억원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