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대비 '月지급식 펀드' 투자자 이탈

저금리 시대의 노후 대비 상품으로 주목을 받았던 '월 지급식 펀드'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월 지급식 펀드는 고금리 채권, 고배당주, 글로벌리츠(부동산 투자신탁) 등에 투자해 발생한 수익을 은행 이자처럼 투자자에게 매달 지급하는 펀드다. 은퇴 생활자의 경우 목돈을 넣고 매달 일정 금액을 받아 노후 생활에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매월 일정 금액을 줘야 하기 때문에 수익이 나지 않으면 투자된 원금을 헐어서라도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투자 원금이 줄어들면서 안정적인 펀드 운용이 불가능해져 수익을 내기 어려운 악순환에 빠졌다.

◇원금 반 토막 된 월 지급 펀드도 있어

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월 지급식 펀드 47개의 지난 1년간 평균 수익률은 -8.63%였다. 운용 자산이 많은 주요 펀드 중 '미래에셋맵스프런티어브라질월지급부동산펀드'는 최근 1년 수익률이 -58.25%로 투자 원금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이 펀드는 브라질 부동산에 투자해 연간 8%가량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헤알화 가치가 급락해 원화 기준으로 부동산 가치가 폭락하면서 손실이 커졌다.

'KB이머징국공채인컴증권자투자신탁(채권)A-월지급클래스'(-15.25%)와 '프랭클린월지급미국하이일드증권자투자신탁(채권-재간접형)ClassA'(-13.52%) 등도 손실이 컸다. 이 펀드들은 하이일드채권(신용 등급이 낮은 회사가 발행한 채권으로 고수익·고위험 채권으로 분류)이나 신흥국 채권에 투자했지만, 작년 말 미국의 금리 인상과 국제 유가 급락 등으로 신흥국 채권과 하이일드 채권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렇게 손실이 큰 펀드들은 대부분 원금을 헐어 고객에게 월 지급금을 주고 있다.

월 지급식 펀드는 2011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다가오면서 은퇴 후에도 매달 현금을 받기를 원하는 투자자들의 욕구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2010년 800억원대에 그쳤던 월 지급식 펀드 시장은 3년도 채 안 돼 2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펀드 수익률이 나빠지면서 애초 계획했던 '이자'는커녕 원금을 헐어서 매월 일정액을 지급하다 보니 원금도 줄고 투자자도 이탈하면서 지난 1일 기준 월 지급식 펀드의 설정액은 840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일본에선 성공했는데 왜 국내에선 실패?

월 지급식 펀드는 일본에서 먼저 인기를 끌었다. 1997년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월 지급식 펀드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해 최근 41조7000억엔(한화 약 376조원) 규모 시장으로 성장했다. 국내 월 지급식 펀드 규모보다 300배나 크다. 일본에선 공모 펀드의 70%쯤이 월 지급식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업계에선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월 지급식 펀드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원인을 자산 운용사들의 경험 부족과 시장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았던 것에서 찾았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계속 돈이 들어오는 기존의 펀드와는 달리 월 지급식 펀드는 목돈이 들어오고 이를 나눠주는 구조인데, 국내 회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펀드를 운용해 본 경험이 적었다"며 "수익도 내면서 매월 지급하는 현금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운용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현 스팍스자산운용 전무는 "일본의 월 지급식 펀드는 해외 채권으로 시작해 배당주로 옮겨가는 등 점진적으로 위험 자산 비중을 늘렸지만,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이미 운용되고 있는 상품을 벤치마킹해 처음부터 투자자들이 위험 자산에 노출되도록 한 게 실패 요인"이라고 말했다. 배 전무는 또 "우리나라 월 지급식 펀드가 시작할 무렵 하이일드 채권, 신흥국 통화 등이 타격을 받으면서 초기 수익률이 나빠진 것도 월 지급식 펀드가 정착하지 못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