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2.11 10:41

물의 요정 마을인 크로아티아의 라스토케를 뒤로하고 나는 지금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동굴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있다. 버스는 분명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앞이고 뒤고 차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잊힐 만하면 차 한 대 지나가고 잊힐 만하면 차 한 대씩 지나간다. 고속도로에 나서기만 하면 보이던 정체 풍경에 익숙한 내게는 참 낯선 풍경이다. 그렇게 가다보니 뭔가 이상하다. 뭘까 생각해보니 언제부터인가 주변의 지붕 색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보이는 지붕이라고는 회색빛뿐이다. 밝고 경쾌했던 오렌지 빛은 사라지고 차분한 회색빛으로 가라앉았다. 그래 참 여기는 슬로베니아지. 언제 국경을 지났는지도 모르게 국경을 넘었다. 아마도 내가 잠깐 잠든 사이에 국경을 넘은 모양이다. 슬로베니아의 자욱한 안개는 지금까지 여행과는 또 다른 맛을 안겨 준다. 해가 뜨긴 떴는데 안개 때문에 달 같이 떠 있다. 박목월 선생님의 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가 아니라 자욱한 안개 속에 해 가듯이 가는 나그네가 되었다.

▲1만 명을 수용 할 수 있다는 콘서트 광장.
▲1만 명을 수용 할 수 있다는 콘서트 광장.

발칸반도에는 늘 따라붙는 말이 있다 뉴스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언젠가부터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세계의 화약고’다. 한데 발칸 여행길에서 마주친 풍경은 전쟁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오히려 무한히 평화롭고 사랑스러웠다. 슬로베니아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버스 속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관광책 책자 속에 들어있는 슬로베니아(SLOVENIA)란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봤더니 ‘LOVE’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조금 엉뚱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그 글자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나온다. 갑자기 머리속에 발칸반도는 어디를 가나 사랑이란 단어가 가장 적합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엉뚱한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버스는 슬로베니아의‘포스토이나 동굴로 북으로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동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습하고 퀴퀴하고 어둔 곳 어디선가 박쥐가 내게 달려들고. 이게 내 동굴 경험의 전부다. 뭐 내 경험이 그렇다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고 크다는 포스토이나 동굴을 그냥 스쳐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난 200년 동안 이 동굴을 보고 간 사람이 3500만 명이 넘는단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동굴관광지로 손꼽힌다고 하는데 나라고 빠질 수 없지 않은가. 그 포스토이나 동굴은 21㎞ 중 5㎞만 관람이 가능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긴 관람코스다. 총 1시간 30분이 소요 된다고 한다.

포스토이나 동굴 앞에 줄을 서서 가이드가 나누어 준 안내책자를 들여다본다. 본다고 뭐 알겠는가. 글씨고 사진이고 내겐 다 그림이다. 영문으로 된 안내 책자인데 영어실력이 바닥인 내게 안내 책자는 소용이 없다. 그저 현지 가이드가 영어로 이야기하면 우리 가이드가 통역 한다. 가이드 이야기를 종합 해 보면 동굴에 철로가 처음 놓인 것은 1872년, 전기가 들어온 것은 1883년으로 나와 있다. 그렇게 일찍? 그 때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다. 우리나라에 철도가 놓인 것은 1899년 노량진에서 제물포까지다. 전기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87년 경복궁이다. 그때부터 이미 포스토이나 동굴은 유럽의 명소였던 것이다.

동굴엔 빛이 없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동굴에서만 산다는 도마뱀같이 생긴 올름이 발견 되었다. 빛이 없으니 눈은 퇴화되어 없다. 옛날 이 곳 사람들은 이 올름을 용의 후손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여기 저기 주변 상가마다 올름이 각종 상품으로 진열 되어 있었다. 올름이 발견되기 전 사람들은 빛이 없는 동굴에 생물이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생물학자가 이 올름을 발견하고는 동굴생물학이란 학문까지 생겼다고 하니 동굴생물학에 혁혁한 공을 세운 셈이다. 올림의 생김새는 어찌 보면 껍질 벗겨진 장어 같이 생겼다. 도마뱀과라는 이 올름이 발견된 다음부터 포스토이나 동굴 주변 곳곳에 마스코트로 등장해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러나 내 눈에 그냥 징그럽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포스토이나 동굴을 관광하는 동안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길 빌 뿐이었다.

▲포스토이나 동굴에 사는 ‘올름’.
▲포스토이나 동굴에 사는 ‘올름’.

정선에서 타 본 꼬마 기차 비슷한 작은 기차를 타고 본격적인 동굴 여행에 나섰다. 입구를 들어서며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지옥이 있다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온통 시커먼 종유석들이 찌를 듯이 다가오니 자칫하다간 찔릴까 두렵기까지 하다. 이 동굴을 발견한 당시에는 유럽 각지에서 몰려 든 귀족들이 횃불을 들고 관광했다니 그 그을음 탓이란다. 1213년에 동굴이 발견되고 1818년에 합스부르크 지배하에 철로가 개설되고 1959년에 전동 기차가 설치됐다고 한다. 참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동굴이다.

꼬마 기차가 종착역에 섰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100년에 1cm가 자라는 석순과 종유석이 만들어내는 예술품들을 한 눈에 들어온다. 이름 하여 콘서트홀이라고 한단다. 넓이가 50m, 길이가 120m, 천장 높이가 35m라고 한다. 음향효과가 좋아 이곳에서 필 하모니오케스트라와 테너의 거장 엔리코 카루소가 콘서트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콘서트홀이라고 한단다. 올려다보니 천장이 높다. 백색유석이 수 억 년간 흘러내려 동굴천정에 고슴도치 털처럼 수 없이 많은 어린 고드름 같은 종유석이 매달려 장관을 이룬다.

▲1만 명을 수용 할 수 있다는 콘서트 광장.
▲1만 명을 수용 할 수 있다는 콘서트 광장.
천천히 미로처럼 뻗어있는 동굴 속 구경에 나섰다. 흰 눈처럼 하얀 석순과 동굴천장에 하얀 종유석이 매달려있는 곳은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다. 황색유석이 흘러 동굴 벽면에 마치 문어조각 예술작품을 걸어 놓은 것 같다. 동굴바닥에 유석이 떨어져 석순이 저 정도로 자라려면 수 억 년이 걸렸을 것이다. 동굴 천장의 종유석과 바닥의 석순이 거의 몇 센티만 자라면 마주 닿을 것 같다. 포스토이나 동굴을 대표적 상징물이 된 아이스크림 모양의 석순을 올려다본다. 정말로 바나나 아이스크림을 세 번 네 번 올려놓은 모양이다. 그 모양에 감탄하고 돌아서니 이번엔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져 나올 것 같은 파이프 오르간을 만났다. 혹시나 소리라도 날까하여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 슬쩍 건드려보고는 씩 웃고 돌아 섰다.

동굴 속을 걷는 내내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그저 ‘아’ 하는 감탄사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사막의 낙타가 있는가 하면 피사의 사탑도 있고 금방이라도 스파게티면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스파게티 홀도 있다. 영국의 유명한 조각가 헨리 무어가 이곳을 ‘ 지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자연 미술관’ 이라고 했다는 그 말이 실감이 났다. 동굴 속 모양에 홀려서 이 곳 저 곳을 걷다보니 문득 바닥이 미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동굴을 다닐 때는 미끄러울 때도 많이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미끄럽지 않도록 바닥에 무언가 깔았다는 이야기였다. 자연이 훼손되지 않는 바닥재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살면서 얼마나 편견을 가지고 사는지 이번 동굴 여행에서 확연히 깨달았다. 동굴이란 습하고 퀴퀴한 곳이 아닌 자연만이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장엄한 지하세계였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가 보고 들은 세상이 다 인 걸 로만 알고 살았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한 것인지를 발견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그 경쾌한 바람 탓이었을까. 상가마다 춤을 추고 있는 피노키오를 만났다. 유럽에서 인형을 손가락에 매달고 하는 마리오네트 인형극에 흔히 쓰이는 목각인형이다. 손가락에 걸고 이리 저리 움직여 보다가 한 개를 사 들었다. 선물을 받고 좋아 할 손자의 함박웃음이 떠올라 나도 웃는다. 팔푼이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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