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2.15 16:46

[시니어 에세이] 세탁기가 얼었다

지하철 분당선을 탔다. 옆자리에 앉은 청년이 엄마와 통화를 한다.

"엄마 드라이기를 계속 틀어나 봐요."

"난로는 없나? 아 미치겠다. 일주일째 빨래를 못하다니."

"AS 부르면 이십만 원이요? "

"내가 집에 가서 어떻게 해 볼 테니 그냥 계세요."

전화를 끊는다. 평소와는 달리 청년의 대화 내용이 귀에 쏙쏙 잘 들린다.

"저 옆자리라 들려서 말인데요."

실례가 될까 봐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청년이 이어폰을 빼고 나를 본다.

"우리 집도 세탁기가 이번 한파에 두 번이나 얼었었는데 내가 다 해결했어요."

청년의 눈빛이 달라진다.

메스콤에서는 기상청에서 한파주의보와 경보를 내렸다. 곳곳의 한파 소식을 전한다. 이번 한파로 베란다에 놓아둔 세탁기, 수도, 물탱크 등 동파 사건이 많아졌나 보다. 누가 알았으랴. 내게 이런 일이 닥칠 줄을….

세탁이 다 되었는 줄 알고 꺼내려 하니 배수 호스가 얼어서 세탁기가 멈췄다. 젖은 빨래를 꺼내 손빨래를 하는데 힘들어서 못하겠다.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다. 빨래가 깨끗이 빨아지는 것도 아닌 거 같다. 더구나 짤 때는 힘을 들여 비틀어도 물기가 많다. 기계가 짜주던 뽀송뽀송한 느낌이 안 든다. 찝찝하다. 여름 빨래면 그래도 할 만하겠는데 겨울 빨래는 힘들다.

몇 개 빠는 것도 아니고 드럼세탁기 한통 분량의 옷을 손으로 빠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는 아닐 거다. 문명의 이기 속에 푹 잠겨있는 내 모습을 직시한다.

AS에 연락하니 친절하게 집에서 하는 방법을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보내 준다. 세탁기의 필요성을 느끼며 언 세탁기를 성심을 다해 녹였다. 두 번이나. 지하철 옆자리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이 청년의 말이 내 귀에 쏙쏙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도 베란다에 모셔둔 세탁기가 안전한지 봐야겠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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