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설움, 겪어 본 사람만 아니까"

"TV에 나오는 양반들이 해준 음식을 우리가 언제 또 먹겠어. 아침도 안 먹고 왔다니까."

설 연휴를 앞둔 지난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식당 '루이'에 아현동과 도화동, 공덕동에 사는 독거노인 40명이 모였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식 요리사 여경래(56)·여경옥(53)씨 형제가 노인들에게 짜장면과 탕수육을 대접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아현동 고시원에서 혼자 사는 이모(78)씨는 "평소엔 밥에다 김치만 차려놓고 먹는데 TV에서 보던 유명 요리사가 직접 만든 짜장면을 먹자니 잘 넘어가지 않는다"며 형제에게 연방 감사 인사를 했다. 김진영(여·73)씨도 "요즘 누가 밥 한 그릇이라도 공짜로 주느냐. 정말 고맙다"고 했다. 추인분(여·77)씨는 "비싼 요리도 좋지만 함께 둘러앉아 먹으니 더 좋다"며 웃었다.

여씨 형제는 거동이 불편해 식당에 못 오는 독거노인 50명에게는 일주일 전 마포구청을 통해 유산슬밥 도시락을 전달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특히 공덕동과 도화동에 계신 분들은 주로 산동네에 살기 때문에 직접 오시기 어려운데 도시락까지 챙겨 주시니 참 고맙다"고 말했다.

형제는 지난 2014년 6월부터 동생 여경옥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의 중식당 세 곳에서 매달 한두 차례씩 독거노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2013년 11월 마포구청이 연 김장담그기 행사에 참여해 자원봉사자들에게 짜장면을 만들어준 게 계기였다. 여경옥 셰프는 "사람들이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맛난 짜장면을 대접해보자고 형과 뜻을 모았다"고 했다.

여씨 형제는 중국 산둥성(山東省) 출신 화교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유명한 요리사가 됐지만 어릴 땐 밥 한 끼 제대로 먹어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형제가 다섯 살, 두 살 나던 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어머니가 경기 수원에서 노점을 열어놓고 빵이나 막걸리를 팔아 형제를 키웠다. 반지하 단칸방 집세도 감당 못 해 이사를 밥 먹듯 하는 형편이라 쌀밥은 구경하기도 어려웠다.

여경래 셰프는 "어릴 때 늘 나라에서 배급받는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 같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고, 하루 한 끼만 먹을 때도 허다했다"고 말했다. 형제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와 중국집에 취직해 배달 일부터 시작해 중국요리를 배웠다. 형인 여경래 셰프는 어머니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라고 통보하자 일주일 동안 울었다고 한다. 여경옥 셰프는 "배고픈 설움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며 "어려울 때 우리에게 도움의 손을 내민 건 함께 가난을 견디던 이웃들"이라고 말했다. 형제는 "요리사가 식사 한 그릇 해 드리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아흔을 넘긴 노모(老母)를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매달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다"며 "한 끼 식사에도 즐거워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우리 형제가 더 힘을 얻는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