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누가 기권할까? 무작정 왔다가 미켈슨 꺾고 우승

미 프로골프(PGA) 필 미켈슨(46·미국)은 우승이 절실했다. 2013년 브리티시오픈 우승 이후 50개 대회에 출전하며 우승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일 막을 내린 PGA 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총상금 700만달러) 대회 우승컵은 미켈슨보다 더 절실하게 우승을 바랐던 선수에게 돌아갔다. 주인공은 2005년 8월 리노 타호 오픈 우승 이후 234경기 동안 우승이 없었던 본 테일러(40·미국·사진)였다. 그는 10년 6개월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 뒤 눈물을 쏟았다.

테일러는 이번 대회 출전 자격도 없었다. 지난해 페덱스컵 랭킹 150위까지 PGA투어 (조건부) 출전이 가능한데, 그는 151위였다. 그는 "누군가 기권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기약 없이 현장에 왔다. 항공기 수하물 요금을 아끼느라 짐은 달랑 경량 캐디백 하나가 전부였다. 그는 2년 전에도 같은 기대를 걸고 페블비치를 찾았지만 코스도 밟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요행히 카를 페테르손(스웨덴)이 기권해 가까스로 출전하게 됐다. 컨디션도 엉망이었다. 지난주엔 콜롬비아에서 열린 2부 리그 웹닷컴 투어에서 배가 아파 경기 중 구급차에 실려 가 기권하는 일도 있었다.

테일러는 3라운드까지 단독 선두 미켈슨보다 6타 뒤진 채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했다. 하지만 테일러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버디 9개를 쓸어 담는 등 7타를 줄이며 합계 17언더파 270타로 경기를 마쳤다. 테일러는 미켈슨이 경기를 마칠 때까지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1년여 전 구명조끼 없이 강에서 혼자 낚시하다 배가 뒤집혔는데, 보트를 붙잡고 버텨 구조된 일이 있었다"며 "그 이후로 기다리는 데는 이골이 났다"고 말했다. 17번 홀까지 테일러에게 한 타 뒤져 있던 미켈슨이 마지막 18번 홀에서 친 1.6m 버디 퍼트가 홀을 돌아 나오자, 테일러는 울음을 터뜨렸다. 테일러는 "오늘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출신인 테일러는 이번 우승으로 고향에서 열리는 마스터스 출전권을 포함해 PGA 투어 2년 출전 자격을 확보했다. 테일러는 최근 3년 동안 벌어들인 상금(117만달러)보다 더 많은 우승 상금(126만달러·약 15억2200만원)도 챙겼다. 지난주 447위였던 세계 랭킹은 347계단 점프한 100위가 됐다.

미켈슨이 단독 2위로 대회를 마무리했고, 2라운드에서 한국인 18홀 최소타(60타)를 기록한 강성훈(29)은 8언더파 279타로 공동 17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