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누리다 전통을 만나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눈은 족히 2m는 돼 보였다. 천공을 향해 뻗어 오른 수백 그루 삼나무 숲을 넋 놓고 바라보다간 '크레바스'에 발 헛디디기 십상이다. 미끄럼방지 장화까지 신었건만 눈 덮인 장관에 "와와~" 감탄을 연발하다 기어이 눈밭에 빠진 기자를 보고 야마모토씨가 혀를 찼다. "내가 이래서 눈 오는 날을 싫어한다니까!"

나이 칠십 전후인 야마모토 나오키씨는 일본 야마가타현의 영산(靈山)으로 알려진 하구로산 가이드다. 초등학교 교사를 은퇴한 뒤 소일 겸 시작한 일이다. 3년 됐지만 하구로산 관광객들 사이엔 유명 인사다. 그가 허풍과 농담을 곁들여 들려주는 산 이야기가 감칠맛 나서다. 하구로산 명물인 '할아버지 삼나무'에 관한 설명은 이런 식이다. "천 년 됐대요. 근데 내가 고향 하코다테를 떠나 여기 온 게 50년 전인데, 그때도 저 나무 나이가 천 년이랬거든? 대체 내 50년은 어디로 간 건지."

그래도 하구로산 상징이자 국보(國寶)인 오층목탑 앞에 섰을 땐 자못 숙연해졌다. "높이가 29m예요. 원래 1200년 전에 세운 탑이라는데 허물어져 600년 전 새로 지었지요.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나무 천연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나요? 사람들은 이 탑에서 갖가지 소망을 빌지요. 자식의 앞날, 농작물의 앞날까지 하나하나. 나는 뭘 비냐고요? '오늘도 자알~ 부탁드립니다' 하지요. 하하!"

◇靈山과 음식과 해파리의 도시, 쓰루오카

일본 혼슈 북서부에 자리한 야마가타현, 그중에서도 쓰루오카시(市)는 천혜의 산과 바다, 그리고 마음을 정진시키는 음식으로 유명한 도시다. 2014년 유네스코가 세계식문화도시로 지정할 만큼 정갈한 향토 음식과 청정한 자연환경으로 이름났다. 하구로산(414m), 갓산(1989m), 유도노산(1504m)은 예부터 산악 수행의 산으로 유명했다. 특히 미슐랭 그린가이드 별 3개를 받은 하구로산의 정진 수행 프로그램은 서양인들도 참여할 만큼 인기가 많다. 2446개 돌계단을 따라 매일 산중 수행을 하면서 하루 두 끼 마음을 닦아준다는 정진 요리를 먹는다. 수행자들은 옛 절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다. 쓰루오카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한 향토 음식을 대접하는 농가 레스토랑이 많은 것도 매력이다. 전원에서 숙박도 하면서 참깨로 만든 두부, 백합의 뿌리로 담근 장아찌, 명태 미소시루 같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니혼게자이신문이 매년 선정하는 농가 레스토랑 베스트 순위에서 매년 1, 2위를 다투는 '나아'와 '지케이켄' 식당이 쓰루오카에 있다.

가모항에 자리한 가모수족관도 가 볼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해파리 수족관이다. 수족관은 1930년 설치했지만 19년 전 해파리로 특화시켰다. "수조에 해파리가 생기는 걸 보고 관람객들이 재미있어했지요. 그래서 해파리를 직접 키워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현재 50종의 해파리 수만 마리가 이 수족관에 삽니다." 오쿠이즈미 가즈야 관장의 설명이다.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해파리, '셜록홈즈'에 나오는 해파리 등 각양각색 해파리 구경도 즐겁지만, 알에서 생후 8일, 15일, 한 달 새로 커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해파리 바(bar)'에서 아이들은 환호한다. 해파리를 넣어 만든 소프트아이스크림(350엔)도 별미다.

◇연어와 匠人들의 천국, 무라카미

일본 소도시를 호젓하게 여행하고 싶다면 니가타현 무라카미시를 들러도 좋다. 쓰루오카에서 이나호 특급열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일명 '연어의 성지(聖地)'다. 북태평양으로 나갔다 산란을 위해 돌아오는 연어떼가 이곳 미오모테강으로 돌아오는 10월이면 무라카미 전역은 연어잡이로 부산해진다. 한겨울엔 집집마다 처마에 연어를 걸어 말리는 풍경이 펼쳐진다. 연어 요리도 발달했다. 무라카미에선 연어 한 마리로 100가지 요리를 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연어의 생장 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인 '이보야 회관' 옆에서 '새먼하우스'를 운영하는 재일교포 이지영씨는 사케 최고의 안주로 이름난 '사카비다시'를 비롯해 콜라겐 덩어리라는 연어코 식초절임, 연어코 구이, 연어된장, 연어카레, 연어스파게티를 보여줬다. "버릴 게 하나 없는 생선이지요. 무라카미에서는 1년에 한 번 연어를 가장 맵시 있고 맛있게 말린 집을 선정하는 대회도 열린답니다."

무라카미는 장인(匠人)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작은 교토'를 목표로 무라카미 시가 조성하고 있는 무라카미 마치야에는 최소 100년에서 300년 이상 가업을 이어온 장인들의 가게가 모여 있다. 120년 된 화과자집 '소센도'는 소금에 절인 벚꽃잎으로 쪄내는 '사쿠라 모찌'로 유명하다. 안주인 하야카와 후지에씨는 쌀가루로 만들어 손으로 잘랐을 때 분이 날리지 않는다는 모나카를 입에 넣어주며 소녀처럼 웃었다. '코코노엔'은 250년 된 찻집이다. 차 재배 북한계선인 무라카미 차 특유의 풍미를 음미할 수 있는 가게다. 아버지 뒤를 이어 찻집을 운영하는 다키나미 기요코씨는 "겨울이 길어 눈이 많고 일조량이 적지만 그래서 차 맛이 구수하고 떫지 않아 무라카미의 명물이 됐다"고 말했다. 15대째 이어져오는 연어전문상점 기카와는 하루 관광객 1500명이 드나드는 명소다. 갖가지 연어 가공 식품을 구입할 수 있고, 1000마리 넘는 연어가 고택 천장에서 건조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이 집안 며느리 기카와 미키씨가 재미난 얘기를 들려줬다. "천장에 매달린 연어를 잘 보세요. 배를 한 번에 가르지 않고 두 번 나눠 가른 게 보이나요? 한 번에 가르는 건 잔인한 할복을 연상시키는 탓에 연어를 배려한 무라카미 사람들의 전통이랍니다."

사케를 뿌려 먹는 사카비다시의 '바람 맛'을 음미했다면 세나미 온천에서 하루를 묵어가도 좋겠다. 노천탕에 몸을 담근 채 낙조를 바라볼 수 있는 료칸들이 바닷가에 일렬로 늘어서 있다.

인천공항에서 니가타 공항으로 주 5회 대한항공이 운행한다. 니가타 역에서 무라카미 역은 특급열차의 경우 45분, 보통열차는 1시간 20분 걸린다. 무라카미역에서 쓰루오카역은 특급 1시간, 보통은 1시간 40분.

쓰루오카의 농가 레스토랑 나아(235-25-8694)는 고등어와 생선요리로 유명하다. 1박에 조식 포함 5500엔. 지케이켄(235-57-2130)은 1박 조식·석식 포함해 6000엔. 쓰루오카 시내에 있는 신차야(235-22-0521)는 참깨 두부와 백합 장아찌, 계란말이가 든 쇼카도 도시락(2700~3000엔)이 맛있다.

무라카미에서 연어를 가장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은 새먼하우스(254-52-1990)다. 일본여행신문사가 선정하는 일본맛집 100선에 해마다 선정되고 있다. 1층은 가공식품 매대, 2층이 식당이다. 바로 옆에 연어박물관 이요보야가 있다.

쓰루오카역 부근에 워싱턴호텔 등 싸고 깨끗한 호텔이 많다. 1박에 5000~1만엔. 무라카미 세나미 온천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료칸인 다이칸소 세나미 노유는 1객실당 2만5000엔부터 있다.

※취재협조: 일본정부관광국(www.welcometojapan.or.kr), 쓰루오카시, 무라카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