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2.23 09:57

‘파쿠르’라는 생소한 단어와 함께 동영상을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파쿠르는 ‘도시와 자연환경에 도전하는 다양한 장애물들을 맨손 맨몸으로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술이자 훈련’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도시의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위험한 암벽, 바위를 거침없이, 장비 없이 내닫는 운동을, 한국에서 처음 시작한 이 개척자는, ‘학교에서는 친구가 한두 명밖에 없고, 소심하기만 했던 내가,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했던 내가 파쿠르를 접하면서 변하기 시작했고, 모든 일에 “나도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고 말한다.

[시니어 에세이] 도전의 대명사 ‘나도 할 수 있다’
사진=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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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도전 정신’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새로운 생활의 도전과 변화는 자신감과 함께, 이 사람의 생애를 바꿔 놓은 것이 틀림없다. 심약하기만 했던 나에게도 이러한 도전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사범학교를 졸업했던 해, 1961년, 병역미필자에겐 발령을 내어주지 않는 당시의 방침에 따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무료하게 지내던 중, 나이가 어려도 자원이 가능한 공군병 입대를 결정하였다. 두 누님 밑에 8남매의 장남으로서 응석받이로 자라, 남에게 의지하고 심약하기만 했던 내겐 참으로 특단의 용기였던 것이다. 가족 동반까지도 마다하고 홀로 입대를 하고, 당시 그 험악했던(?) 군 생활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잘 치러내어 단단한 정신과 육체를 소지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도전은 교사 발령을 받은 후, 1965년 여름 방학에 치러진 자전거 여행이었다. 충북 북부지방을 거쳐, 영월, 강릉으로 올라 동해안선을 따라 경주까지 내려가는 험로를 동료와 함께 자전거로 달린, 당시 유행하던 ‘자전거 무전여행’이었다. 당시 도로 사정은 내륙이건 동해안의 군사도로건 비포장도로로 자갈길이었다.

숙소는 초등학교 교실이나 교무실에 의탁하였다. 일어나 달리다가 아침을 먹고, 종일을 달려, 저녁을 먹고, 그 후 또 달려 어둑해질 때 만나는 학교가 잠자리가 된 것이다. 동료의 전임지인 경주에 도착하여서는 그곳 학교 숙직실에서 편한 잠을 자며, 지방민인 듯, 자전거로 경주 시내를 돌아보고, 불국사까지도 자전거 답사를 하였다.

실로 하루에 200여 리를 넘게 달렸다는 계산이 나왔다. 대관령에서 동해안으로 내리뻗은 내리막길을 달릴 때는 신이 나기도 했지만 아찔한 경우를 당할 때도 있었다. 바지 아랫도리가 땀에 절어서 하얀 소금기 얼룩이 생겼다. 사서 고생이란 말이 생각나는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쌓여갔다.

자원 입대로 치른 군 생활이나, 비포장도로 자전거 여행길은 나의 성격을 바꿔놓을 만한 일이었다. 매사에 소심하던 나를 도전정신이 강한 청년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고, ‘나도 할 수 있다’ 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교직 생활 속에서도, 퇴직 후 생활 속에서도 이 도전정신, ‘나도 할 수 있다’ 라는 정신은 이어져 내려왔다. 40년 교직 생활 속의 도전정신은 물론, 퇴직 후에도 신학원 공부를 하고, 대학에 입학하여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들 속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하는 등 남다른 도전이 이어내려 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지금도 노인복지시설을 찾아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으며, 선친이 물려주신 댓 마지기의 논농사도, 처음 손에 들어 본 낫이나 삽이지만, 자영으로 이제 8년째를 맞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훌륭한 도전과 성공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다. 도전의 대명사로 들어오던, 정주영 회장의 일화, 폐선으로 서해안을 막아 간척지를 만들고, 유엔 묘지에 겨울 보리를 심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 ‘이봐, 해 봤어?’ 란 명쾌한 도전 용어가 항상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다.

한 때, ‘하면 된다’ 라는 말이 유행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을 접지 않을 수 없는 계기가 있었다. 군 훈련을 수료하는 아들이 수료식에서의 부모 대표 인사를 하여야 한다기에, 나의 군생활 이야기를 잠시 한 후,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달라진 군 생활을 칭송하고,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군 생활을 잘 마치고 사회에 나가 훌륭한 역군이 될 것을 강조하였다.

나의 인사말 후, 이어진 훈련부대장의 뜻밖의 한 마디, ‘모든 것을 다, 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후략)’ 라는 말은 나를 당황케 하기보다는 군대가 사회보다 한발 더 나아가 민주군대가 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하면 된다’ 라는 강요의 뜻이 담긴 말보다 ‘할 수 있다’란 노력의 말을 더 즐겨 쓰게 되었다.

‘파쿠르!’ 위험을 무릅쓴 도전정신이 강하게 요구되는 운동으로, 심약했던 한 청년의 변모된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똑같이 심약했던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감히 써 보았다. 누구에게나 많은 시련과 도전의 기회가 닥치리라. 그러나 그것을 헤쳐나가는 신념이나 자세는 모두 다를 것이다. 모두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의지와 신념을 갖고, 난관에 도전하여 성공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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