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2.29 10:30

방학이다.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즐겁겠지만 난 한마디로 힘들다. 내 생활은 거의 손자들의 시간표에 맞춰져 있다. 한차례 겨울 한파가 지나고 날씨가 풀린 어느 날, 손자들과 도보에 나섰다.

수원 광교저수지-지게길-모수길-경기도 인재개발원 약 12km. 어른들과 함께하는 도보라 아이들 걸음으로는 좀 힘들겠다 싶었지만 남자아이들이니 그냥 가본다. 5학년인 준이는 몇 번 할머니와 도보하러 다닌 적이 있다. 3학년이 현이가 초행길이라 약간 걱정은 된다.

할머니를 잘 따르는 손자들이다. 희망 사항 중 한 가지는 할머니 따라 도보여행 가는 것이란다. “얘들아 우리 목요일에 도보 갈까?” 손자들은 이 말 한마디면 언제나 “콜~”이다. 걷기를 할 때 꼭 준비해야 할 것은 트래킹 화와 두꺼운 양말이다. 가볍게 생각하고 길을 떠났는데 작은놈이 조금 걷다가 힘들어한다. 이 녀석 운동부족으로 언제나 통통한 얼굴과 몸매를 자랑한다.

[시니어 에세이] 애들아 우리 도보갈까?
/조선일보DB
조금 경사진 곳을 오르자 아니나 다를까 힘들어한다. 얼굴이 달아올라 통통한 두 볼이 사과 반쪽씩 붙여 놓은 거 같다. 스틱을 키에 맞게 조절하여 쥐여 준다. 힘이 드니깐 할머니께 어리광한다. “할머니~ 할머니~ 힘들어요.” 일행 중 한 분이 “ 너 힘들면 혼자 집에 가거라. 조금 가면 버스 있다. 아직 어리구먼!” 약을 올리신다. 현이 자존심 상했나 보다. 갑자기 걷는 속력을 내더니 맨 앞에 가서 걷는다. 녀석 엄살이 맞다.

저수지의 물은 아직 얼음으로 덮여있다. 바람도 제법 쌀쌀하다. 걷는 사람들은 열이 나서 흘린 땀을 식힌다. 지겟길은 외씨버선길처럼 아름답다. 나뭇잎이 산을 덮을 때쯤이면 더욱 길이 아름다울 것이다.

“할머니 발바닥이 아파요“ 앉아 쉬면서 신발을 벗겨 보니 아뿔싸 내 잘못이다. 얇은 양말에 운동화. 양말을 벗겨 발의 열을 빼준다. 그리고 두꺼운 양말로 바꿔 신겼다. 아직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이다.

길을 걷다 보니 무명의 6·25 참전 구국 용사의 묘비가 보인다. 현이는 그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묵념을 한다. 퉁퉁한 모습과는 달리 감성적이다. 그러니 쎄시봉 노래를 좋아하나 보다. 날센돌이 준이는 맨 앞에 서서 힘도 안 들이고 잘 걷는다. 힘들지도 않나 보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떡만두국에 비빔밥. 남길까 봐 걱정을 했는데 두 놈이 게눈 감추듯이 정신없이 먹는다. 꿀맛이란다. 집에 있음 방학이라 텔레비전이나 게임에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텐데 이렇게 야외에 나와서 걸으니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해지는 거 같다. 조금 더 크면 할머니를 따라다니겠는가. 난 오늘도 지금을 즐기고 감사하며 손자들과 친구가 되어 방학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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