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경기처럼 우리 인생도 진중하게 18홀까지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

199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겨 보던 사람들이라면 현란한 만담 콩트를 선보이던 코미디언 서경석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MBC 개그 콘테스트에서 의학, 경제 관련 전문 용어로 구성된 만담 개그를 펼치며 ‘고학력 개그’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출해낸 서경석과 이윤석은 90년대 코미디를 대표하는 명콤비였다. 특히 서경석은 젠틀한 웃음만큼 스마트한 느낌으로 2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담백한 웃음으로 대중에게 변함없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예능프로그램, MC, 라디오 DJ, 그리고 골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코미디언 서경석을 만나보자.

“S대 출신 같은 수식어보다는 그저 ‘서경석’ 자체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Q : ‘서경석’ 하면 S대 출신, 엘리트 코미디언의 대명사로 알려졌는데요,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데뷔할 때 S대 출신인 것이 알려져서 그런 것뿐이고요, 사실 저는 어디 가서 제 입으로 S대에 대한 말을 거의 하지 않아요. 스마트하다고 해주시는 것? 그리 좋지만은 않아요. 저는 그것보다 '실제로 보니 더 잘 생겼다’라든가, 뭐 이런 말씀들을 해주시는 것이 훨씬 좋죠(웃음). 저는 실제로 많이 허당끼가 많아요.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요. 앞으로도 그저 ‘서경석’이라는 사람 그 자체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Q : 코미디언으로 출발하셨는데, 예능프로그램 MC, 라디오 진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희극인’ 즉, 코미디언이에요. 코미디언으로 데뷔했고, 지금도 코미디언입니다. 사회를 볼 때도 ‘코미디언 서경석입니다’라는 멘트로 시작하죠. 다만 코미디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거죠. 사실 정통 개그 프로그램도 하고 싶은데, 그건 이제 후배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하는 게 맞겠죠? (웃음) 저는 코미디언입니다.

Q : 93년에 데뷔하셨으니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별다른 부침(浮沈)이 없이 늘 꾸준하세요. 쉽지 않은 연예계, 방송계에서 본인만의 롱런 비결이 있다면요?

별로 티는 안 났어도 나름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지요. 특별한 비결이 있다기보다 어떤 상황에서든 저와 함께 일하시는 분들에게 피해 주지 말자는 생각으로 해왔죠. 방송생활은 골프하고 많이 닮았어요. OB가 났어도 좀 분발해서 보기로 막을 수 있는 것이 골프의 묘미죠. 골프도 항상 18홀까지 가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방송도, 또 우리 인생도 경망스럽게 판단하기보다는 진중하게 18홀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움켜쥐려고 하기보다는 조금씩 비우면서 한 홀 한 홀 쳐나가는 골프처럼요. 저는 이제 7홀 정도? 100세대 시대를 기준으로 아직 나인 홀도 오지 않은 거지요. 그리고 지금부터는 18홀까지 가기 위한 건강을 챙겨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에너지 넘치는 딸과 놀아주는 게 쉽지 않아요”

Q : 건강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13살 연하의 아내와 늦은 결혼으로 이제 다섯 살짜리 딸을 키우는 아빠신데요, 건강 문제가 남다르게 와 닿으시겠어요.

맞아요. 집에 가면 한참 어린 여자가 있고, 그분보다 한참 더 어린 여자가 또 있죠. 우리 딸은 정말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아들 같은 딸이에요. 이 녀석과 놀아주는 일은 보통 체력으로 할 수 없는 데다가, 번쩍번쩍 안아주려니 부쩍 힘이 달리는 것을 느껴요. 그래서 운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죠.

제가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데, 골프나 축구같이 함께 어울리는 이런 것들을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피트니스 센터에서 하는 운동은 훈련 또는 고문 같은 것으로 간주했던 사람이에요(웃음). 그런데 3개월 전부터 MBC 내의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해서 열심히 운동했고, 며칠 전에 6개월 연장을 하며 열심히 출석하고 있어요. 혼자 하기는 싫어서 매니저와 함께하고 있죠. 매니저가 저 때문에 운동을 당하고 있죠.

Q : 그런데 어쩌다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골프의 매력에 빠지셨는지 궁금합니다.

20대 후반에 동료 개그맨을 따라갔다가 얼떨결에 첫 필드 경험을 했어요. 그렇게 골프를 시작했는데, 시작한 지 1년 만에 그만 홀인원을 한 거에요. 박세리 선수가 주로 훈련한 유성CC에서 일어난 일이죠. 그리고 1년 후에 군대 갔고, 제대한 후 열심히 즐겨서 지금까지 온 거에요. 잘 치지는 못해요. 80대~90대 초반 정도? 저는 ‘엔조이’하는 골프를 추구하죠. 강성진 씨처럼 다양한 장비 사서 시험해보고, 장타에 도전하고 그러는 힘든 건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아요. 그냥 지인들과 즐겁게 골프를 즐기고 싶은 1인입니다.

“인생에서도 트러블샷을 성공하는 것이 참 중요해요”

Q : 골프를 즐기면서 제일 뿌듯할 때는요?

트러블샷에서 성공할 때죠. 저는 나름 ‘트러블샷의 귀재’입니다. 그 얘기는 트러블 상황에 엄청나게 자주 빠진다는 말이 되겠죠? 얼마나 트러블 상황에 자주 빠지면 ‘귀재’ 씩이나 되었겠어요 (웃음). 그래서 골프는 인생과 많이 닮아있고, 그래서 골프가 재미있다는 거예요. 트러블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하겠다는 의지를 골프에서 배우는 거죠. 저는 좀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면 ‘아~ 공이 러프에 빠졌구나’라고 생각하며 멋진 트러블샷으로 빠져나오겠다는 의지를 다집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뜻밖에 쉽게 러프와 벙커를 벗어나게 돼요. 결국 뜻밖에 부드러운 러프와 얕은 벙커에 감사하다고 할까요(웃음).

인생에서도 트러블샷을 성공하는 것이 참 중요해요. 저는 MBC <진짜 사나이>를 하는 21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는데요, 갈비뼈가 부러진 적도 있어요. <진짜 사나이> 이후에는 어떤 일도 어렵지 않더라고요. <진짜 사나이>에서 큰 깨우침을 얻은 거죠.

Q : 골프에서 삶의 철학을 찾아내시는군요. 인생에 관한 이야기라면 요즘 진행을 맡으신 <여성시대>를 빼놓을 수 없겠어요.

<여성시대>는 정말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여성시대> 합류에 고민이 많았어요. 제가 맡기엔 아직 내공이 부족하지 않은가, <여성시대>의 그 많고 깊은 사연들을 감당할 만한 그릇인가 하는 고민도 많았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 <여성시대>가 시니어 세대만을 위한 방송이 아니고 젊은 세대를 아우르는 좋은 방송이라는 것, 함께 공감하고 울고 웃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양희은 선배님을 비롯해 <여성시대> 관계자들에 비하면 저의 경력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한 7개월 되었나요? 그동안 정말 많이 배웠고, 많이 울었습니다.

<여성시대>에 보내오는 사연들에 비하면 제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벙커와 러프는 극복할 수 있는 작은 에피소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또 살아가는 일에 큰 용기를 오히려 제가 얻어가고 있어요. <여성시대> 많은 분이 들어야 합니다. <여성시대>가 오전 9시~11시 타임이라 직장인과 학생들이 듣기 어려운데, 뭐 어떻게 다이제스트 판을 만들어서 배포한다거나 이런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니까요. 그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한 번쯤 듣고 위안을 받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해는 <여성시대>를 잘하는 것이 목표이자 계획이에요”

Q : 2016년 계획은요?

흔히 하는 신년계획은 세우지 않았어요. 계획과 결심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고요, 올해는 <여성시대>를 잘하는 것이 목표이자 계획이죠.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여성시대>를 통해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7개월간 접했던 사연이 제 인생을 통틀어 읽은 책 200권보다 더 저를 성장하게 했어요. 앞으로 만나게 될 여러분들의 사연에 설레고 있어요. 더 많은 분이 2016년 <여성시대>를 통해 함께 웃고, 우는 시간을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많은 청취 부탁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며 20여 년간 왕성한 활동을 펼친 서경석은 자신을 ‘이제 막 7홀에 들어섰다’고 표현한다. 7홀은 골퍼들에게 있어 전반 홀을 슬슬 마무리하는 시점이자, 여섯 홀을 돌며 풀린 몸에 다시 한 번 재시동을 거는 홀이기도 하다.

여성시대를 진행하며 마음의 양식을 하나둘 채우고 있는 코미디언 서경석. 앞으로 남은 자신의 인생의 홀에서는 어떤 멋진 플레이를 펼칠지 기대해본다.

*사진 및 자료제공 : 한국캘러웨이골프 www.callawaygolf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