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엔 한국영화 작품상 받고 저는 주제곡을…"

"올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끊어버렸어요. 스팸 전화인 줄 알았죠. 한국인이 부른 노래가 후보에 올랐다니 기막힌 기적 같아요."

지난 29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전화를 받은 소프라노 조수미(54)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시상식을 마치고 영화사에서 연 파티에 참석했다가 숙소로 돌아온 직후였다. 불과 몇 시간 전, 제88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레드카펫을 밟은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조수미는 그가 부른 영화 '유스(Youth)'의 주제곡 '심플 송(Simple Song #3)'이 주제가상 후보에 올라 이날 시상식에 참석했다.

상은 007 주제곡에 돌아갔지만 국내 SNS에서는 '결과와 관계없이 우리 마음속 위너는 조수미', '역시 조수미는 한국의 자랑'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는 "'심플송'이 클래식 곡이다 보니 대중성에서 앞선 007 주제가에 상이 돌아간 것 같다"면서 "수상을 못 한 것보다 축하공연을 못 한 것이 더 원통하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무대에 서서 대한민국 국민이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적인 노래를 들려 드리고 싶었는데…. 정말 원통해요, 원통해."

원래 조수미의 축하 공연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최종 단계에서 '곡을 3분으로 줄여서 불러달라'는 주최 측과 '곡을 줄이면 느낌이 죽어버린다'는 작곡가의 주장이 맞서다가 결국 불발됐다. "제가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넘나들다 보니 양쪽 입장이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자존심 대 현실이죠. 그래도 어찌나 아쉽던지…. 한동안 쓰린 속을 다스리기 힘들었어요."

영화 '유스'는 스위스에 은둔한 70대 작곡가에게 영국 여왕의 사절이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여왕의 남편 생일파티에 참석해 '심플송'을 지휘해달라는 왕실의 부탁을 작곡가는 "개인적인 사연이 있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난처해진 사절이 '이래도 허락하지 않겠느냐'는 듯 한마디를 던진다. "조수미가 부르겠다고 승낙했습니다(The great soprano Sumi Jo has agreed to sing)." 소프라노 조수미의 인지도를 웅변하는 장면이다.

이번 시상식에서도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드레스 경쟁이 치열했다. 조수미도 어떤 드레스를 입을지 한 달 전부터 고민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옷은 디자이너 서승연씨의 작품이다. 서씨는 본지 통화에서 "가장 서구적인 드레스를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디자인한다는 원칙으로 이번 드레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씨는 경남 진주산(産) 실크에 분홍 스팽글 수만 개를 달고 블랙 레이스로 전체를 감싸 품위 있으면서 돋보이게 만들었다. 스타들 사이에서 눌리지 않는 화려함을 보여준 조수미의 보석은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 '반 클리프 앤 아르펠'이 협찬했다. 목걸이·귀걸이·팔찌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희귀 컬렉션으로, 반 클리프 앤 아르펠 프랑스 파리 본사에서 그를 위해 공수해 보내줬다.

노래가 업(業)인데 노래를 못한 조수미는 "원통하다"며 수화기 너머로 연방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이번에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했다. "오늘의 한을 대한민국 영화로 꼭 풀고 싶어요. 다음엔 꼭 대한민국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제가 그 주제곡으로 축하 공연을 하고 싶어요. 아마 그런 날이 곧 오지 않을까요?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