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탄 왕자는 없어, 인생은 내가 책임지는 거야

동화에서 고초를 겪는 소녀와 공주들은 결국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 하지만 현실에선 왕자를 만나 사랑의 결실을 보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지 않는다.

3일과 10일 각각 개봉하는 '룸'(감독 레니 에이브러햄슨)과 '조이'(감독 데이비드 O. 러셀)는 왕자 없이 혼자서 행복을 찾으려는 여자들을 그린다. 전자는 타의로, 후자는 자의로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 되면서 생존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다. 두 여성이 이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이 시대의 여성, 특히 어머니의 전형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공교롭게도 두 주인공 이름이 모두 '조이', 기쁨이다.

◇상처받은 여성의 대변자 '조이'

현실엔 왕자님이 없다. '룸'의 조이나 '조이'의 조이는 폭력적이거나 무책임한 남자들 때문에 인생이 나락으로 빠진다. 이들은 남편·남자의 도움 없이 어머니 노릇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딛고 혼자 일어서야 한다.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할 정도로 똑똑한 '조이'의 조이(제니퍼 로렌스)는 대학 때 밴드 가수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아이 둘을 낳을 때까지 가장 노릇을 하지 않는 남편과 이혼했지만, 그는 여전히 조이 집에 얹혀살고, 조이의 부모까지 그녀에 의지한다.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조이는 손으로 물을 짜지 않아도 되는 물걸레를 발명해 사업가가 되려고 하지만 주변에선 그에게 "안 될걸" "난 네가 실패할 줄 알았다"고 말한다.

'룸'의 조이(브리 라슨)는 열일곱 살 때 한 남자에게 납치를 당해 작은 방에 감금당한다. 그 방에서 아들 잭(제이컵 트렘블레이)을 낳고 키운다. 7년이 지나, 그는 아들을 데리고 방에서 탈출한다. 하지만 탈출하고 난 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단 생각에 조이는 방황하고, 세상은 그를 편견에 찬 시선으로 바라본다. 용기를 내 방송에 나선 조이에게 앵커가 "감옥에 간 납치범도 어쨌거나 아이 아버지가 아니냐"고 묻는 식이다.

◇왕자님은 필요 없어

두 명의 조이는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조이'로서 온전하게 살아가려는 여자들이다. 이들이 자기답게 살기 위해서는 발악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한다. 사업가 조이는 자신의 대걸레를 엉망으로 소개한 홈쇼핑 채널에 자신이 직접 쇼호스트로 출연하고, 돈을 가로챈 사기꾼에게 찾아가서 윽박지르며 담판을 짓는다. '이 구역의 미친 X은 나야'라고 할 만한 몸부림을 치고 난 뒤에야 그는 자신의 정당한 몫을 챙길 수 있었다.

출구 없는 방 안에 7년간 갇혀 있던 조이도 자신이 처한 환경에 안주하지 않는다. 납치범의 폭력에도 그는 몸을 단련하면서 끊임없이 도망칠 방법을 연구한다. 방에서 벗어난 뒤에도 트라우마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그 방을 찾아가 찬찬히 둘러보는 용기를 낸다. 자신의 삶을 빼앗아 간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조이'와 '룸'에는 '백마 탄 왕자'가 나오지 않는다. 두 여자에게 도움을 준 것은 남편이나 남자 친구가 아니라 친구와 자식이었다. '조이'의 조이를 '신데렐라'로 만들어줄 줄 알았던 홈쇼핑 채널 사장(브래들리 쿠퍼)은 손익계산서에 따라서 움직이는 비즈니스맨 역할에만 충실하다. 덕분에 조이는 '누구의 애인이나 아내'가 아니라 '사업가'로만 그려질 수 있었다. 처량한 피해자로 남을 뻔한 '룸'의 조이가 용감한 생존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기쁨'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법이다. '조이'의 조이는 딸에게 말한다. "왕자님은 필요 없어."

조이를 연기한 두 여배우는 지난달 29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 부문 후보에 올랐다. '룸'의 조이, 브리 라슨이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