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아파트 대표 이젠 '터치'로 뽑는다

작년 11월 입주한 강원 춘천시 롯데캐슬 스카이클래스 아파트 단지(889가구)는 올 연초 모바일 투표와 서면 투표를 병행해 동대표 선거를 치렀다. 모바일 투표를 도입한 것은 춘천시내 아파트 단지 중 처음이었다. 투표율은 83.3%로, 높아야 20% 선인 다른 아파트의 4배 이상을 기록했다. 투표에 참여한 741가구 중 690가구(93.1%)가 모바일 투표를 했다. 서면 투표를 한 주민은 대부분 휴대전화가 익숙하지 않은 노인층이었다. 임춘환 관리소장은 "대부분의 아파트가 아침에 출근해 저녁 늦게 오는 주민들이 많아 투표율이 저조하고, 나중에 동대표의 대표성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다"며 "이런 잡음을 없애기 위해 모바일 투표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3년 11월 아파트 대표 선출을 위한 '온라인 투표 서비스(K-voting)'를 도입한 이후 전국 아파트 단지에 온라인·모바일 투표가 확산되고 있다. 뒷돈 거래, 관리비 횡령 등 각종 아파트 비리의 출발점인 동대표 선거를 투명하게 치르려는 아파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투표율 3~4배로 상승, 선거도 투명해져

온라인·모바일 투표를 도입한 아파트 단지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막 도입된 2013년에는 4개 단지에 불과했지만, 2014년엔 77개 단지, 작년엔 325개 단지로 늘어났다. 올 1~2월에도 69개 단지가 이 방식으로 동대표 선거를 진행했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475개 아파트 단지가 온라인 투표를 도입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우성 1·2·3차 아파트(1842가구) 주민들도 지난달 18~19일 26대 동대표 선거를 온라인·모바일 투표로 진행했다. 이 단지는 2014년 25대 동대표 선거 때만 해도 주민이 직접 선거 용지에 도장을 찍어 투표했다. 관리소에 투표함을 두면 투표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해 경비원이 투표함을 들고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며 투표용지를 받아 겨우 투표율 20%를 채웠다.

하지만 온라인·모바일 방식을 도입한 이번에는 선거인 명부에 오른 1626가구 중 950가구가 투표에 참가했다. 투표율(58.4%)이 2년 전보다 3배 가까이로 올랐다. 나의수 입주자대표회장은 "무엇보다 경비원이 연임을 노리는 동대표와 짜고 주민들에게 '이 후보를 찍어달라'고 유도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비용, 서면 투표의 6분의 1 수준

온라인·모바일 투표는 스마트폰이나 개인용 컴퓨터(PC) 등을 통해 투표를 진행한다. 투·개표는 모두 지자체 선관위가 관리한다. 본인 인증만 하면 스마트폰이나 PC에서 터치나 클릭을 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투표를 끝낼 수 있다. 개표 결과는 투표가 끝나자마자 바로 공개된다.

아파트 단지가 온라인 투표를 도입하려면 입주자대표회의가 도입 안건을 상정해 의결하고, 주민 과반수의 찬성을 거치면 된다. 온라인 투표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가구당 770원(2000가구 미만 단지 기준)이다. 투표함 설치, 투표용지 제작 등으로 가구당 5000원 정도가 소요되는 서면 투표에 비하면 비용이 6분의 1 정도이다.

◇"온라인 투표 도입 의무화해야"

전국 아파트에서는 여전히 동대표 선거 때마다 갈등이 벌어진다. 경기 양주시의 한 아파트는 2014년 9월 동대표 선거 과정에서 투표율이 지나치게 낮았다는 이유로 그다음 달에 다시 방문 투표를 실시했다. 이에 대해 일부 주민이 '선거가 끝났는데, 방문 투표를 한 것은 불법'이라고 반발해 소송전이 벌어졌다.

이처럼 아파트 단지 내 선거가 과열되는 것은 동대표가 관리비 사용 결정 등에 관한 권한을 갖고 있고, 이것이 이권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송주열 아파트선진화운동본부 대표는 "친한 주민 몇 명만 모으면 동대표에 쉽게 당선되다 보니 동대표끼리 짜고 온라인 투표를 도입하지 않는 아파트가 많다"며 "아파트 비리를 뿌리 뽑으려면 동대표 선거 시 온라인 투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