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15 15:12

[시니어 에세이] 봄을 기다리며

봄빛이 완연하니 오늘도 아파트 앞 둘레길로 나선다. 찬바람 불 때는 산모롱이 돌아서면 하나둘 보이던 사람들이 오늘은 내 눈길 닿는 곳마다 사람들로 넘쳐 난다. 삼삼오오 다니는 사람도 있고 부부가 손을 잡고 나와 걷는 이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드디어 서울에도 봄이 오려는지 생강 꽃 가지에 봉오리가 몽실 거리며 제법 노란빛을 띄운다. 멀지 않아 이 생강 꽃이 피어나면 진달래꽃이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힘겹게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신다. 그 할머니의 걸음이 위태위태해 보여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움찔거린다. 그때다. 할머니 뒤쪽에서 오던 한 할머니의 걸음이 빨라지더니 앞서 가는 할머니를 반갑게 불러 세운다. 지나가며 들리는 말소리로 보아 겨울 동안 만나지 못한 사이인 모양이다. 추우니 나오지 못한 탓일 게다. 보고 싶었다는 인사를 주고받는 할머니 두 분의 얼굴이 더없이 환하다. 이제 다시 자주 보게 되었다며 건강하시라는 덕담들을 주고받으신다. 두 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신다. 위태해 보이던 걸음도 어느새 힘이 들어가 힘차다.

세월이 각박하여 혼밥이니 혼술이니 하는 새로운 트랜드가 나타났다. 물론 예전에도 혼자 사는 사람들이 왜 없었겠느냐마는 드러내 놓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기에 그 행동을 지칭하는 마땅한 말조차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일상화되어 간다. 혼자 밥 먹으면 혼밥이고 혼자 술 먹으면 혼술이고 혼자 노래방 가면 혼방이란다. 홀로 여행 다니는 사람도 해마다 늘어난다니 바야흐로 홀로 족의 세상에 되어가는 모양새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오늘도 홀로 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반찬을 꺼내놓고 먹기도 귀찮아 그릇에 미역국 끓인 것을 퍼 담고 밥을 말았다. 컵에 물 한잔 담아서는 식탁에 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혼자 먹는 밥이 무슨 찬거리를 늘어놓고 먹겠는가. 단출할수록 좋은 게 혼자 먹는 밥이다. 요즘 유행어로 말하자면 혼밥인 셈이다. 나이가 드니 저절로 혼밥족이 되어 간다. 자식들은 성장하여 떠나고 떠나지 않은 자식도 이 일 저 일로 나하고 밥상머리에 앉아 도란거리며 밥 먹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아무리 혼족이 되어 간다 해도 혼자 길을 걷는 것은 참 싫다. 누군가와 도란도란 거리며 같이 걷고 싶을 때가 많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야기해도 좋고, 마음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꺼내도 좋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직장 생활을 너무 오랫동안 해 온 탓에 마음 편한 친구가 없는 탓이다. 해진 운동화 질질 끌고 나와도 반갑게 맞아주며 같이 걸어갈 친구가 없는 것이 참 안타깝다.

며칠 전에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근사한 찜질방이 있다고 같이 가자고 나오라는 전화였다. 그 좋다는 온천탕도 잘 즐기지 않는 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어물쩍 넘기고 가지 않았다. 스스로 금 하나를 그어 놓고 그 금을 넘지 않으려는 내 성질 탓이다. ‘가까이도 멀지도 않게’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그 덕분에 큰 탈 없이 사십사 년이라는 긴 직장생활을 마쳤다. 그러나 다른 방향에서 보면 ‘가까이도 멀지도 않게’라는 신조(信條)가 오늘의 나를 이렇게 ‘혼족’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이도 멀지도 않게 살면서 놓친 것들을 이제는 좀 찾고 싶다. 뜨겁고 진한 것들을 찾고 싶다. 허심탄회하게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도반(道伴) 한 사람쯤 만났으면 좋겠다. ‘가까이도 멀지도 않게’가 아니라 ‘가까이, 더 가까이’를 찾아서 마음을 열고 오늘도 걸어간다. 비록 지금 걷는 걸음이 머뭇대며 비틀대며 걷는 겨울 길이라도 언젠가는 내가 걷는 그 길에도 봄은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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