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窓 만났죠"

연기자 조민기(51)에게 1998년 가을은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했던 때였다. "가장(家長)이라는 책임감에 너무 많은 작품에 출연한 게 탈이 났어요." 1995년 전후로 4~5년간 20여편에 달하는 드라마와 연극에 출연한 그는 지쳤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려고 홀로 베트남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조민기는 사진의 매력과 만났다.

조민기가 오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다. '조씨 유랑화첩―쿠바(CUBA) 말레콘(Malecon)'이라는 이름의 이번 전시에는 그가 지난 2006·2008·2011년 세 차례에 걸쳐 여행한 쿠바에서 촬영한 사진 30여점이 걸렸다. 베트남·일본·멕시코 등에서 찍은 사진과 수필을 곁들인 책 '조씨 유랑화첩, 당신을 만나 행복합니다'를 내면서 지난 2005년 첫 전시를 연 이래 세 번째 개인전이다. 초대 작가로 서울·부산·일본 등지에서 열린 각종 사진전에 참가한 것까지 포함하면 열네 번째다.

"배우는 인기를 얻을 때 받는 박수뿐 아니라 무관심에서 오는 고요도 견딜 줄 알아야 해요. 나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들여다보기는 어려운 직업이기도 하고요. 그 나름의 심신 수련법이 필요한데 제겐 그게 사진이었어요." 사진은 실습과 독서를 통해 독학(獨學)했다. 그는 "렌즈 표면에 묻은 먼지나 물방울조차 그곳의 흔적이라고 생각해 닦아내지 않는다"며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 것은 물론 포토샵 작업도 절제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낸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말레콘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 해안에 놓인 방파제다. "말레콘에서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이고, 모녀는 두런두런 삶을 나누고, 아이들은 뛰어놀아요. 해가 지면 낡은 악기들을 둘러멘 원 맨(one man) 밴드가 나타나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춤을 추죠." 조민기가 쿠바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자유로움 때문이다. 그는 "쿠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지만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안다"며 "행복이란 남과 비교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가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조민기는 연기 경력 34년 차 배우다. 소름 돋는 악역(惡役)으로 이름난 그는 '야망(1993)'을 비롯해, '천사의 키스(1998)' '사랑과 야망(2006)' '에덴의 동쪽(2008)' 등 출연한 작품만 50편이 넘는다. 그런데 "사진가의 길도 제대로 걷고 싶었다"고 했다. 첫 전시를 서울 인사동에서 연 이유다. 뜨내기가 아닌 진짜로 인정받으려면 갤러리와 화랑이 모여 있는 인사동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배우가 사진 찍어봐야 얼마나 찍겠느냐"는 선입견과도 싸워야 했다. "직접 찍은 사진이 맞느냐?"는 노골적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의심을 떨쳐내려고 8년 전 집 근처에 스무 명 정도 들어갈 만한 크기의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조명 등 각종 장비 활용법을 연마했다.

조민기는 아내의 반응에서 사진 찍는 이유를 찾는다. "아내는 '당신이 여행을 갔다 오면 마음이 편해 보이고 온화해지는 것 같다'고 합니다." 전시명 속 '유랑화첩(流浪話帖)'은 '여행하며 담은 대화(對話)의 기록'이라는 생각을 담았다. "사진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이면서 동시에 주변 사람의 감각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