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적 한번에… 병원 구내서 추격전, 버스 추월해 급정거

지난 15일 오후 3시쯤 승객 10여명을 태우고 경기 부천의 도로를 달리던 시내버스가 도로 한가운데서 급정거를 했다. 아우디 차가 버스 앞으로 갑자기 끼어들며 막아섰기 때문이다. 버스 승객이 적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아찔한 상황이 벌어진 건 '경적 시비' 때문이었다. 이 일이 있기 직전 버스 운전기사 박모(24)씨는 아우디 차가 1차로와 2차로 중간 차선에 걸쳐 달리자 경적을 울렸다. 그러자 아우디 차 운전자가 버스 운전석 쪽으로 바짝 붙어 달리면서 버스 운행을 방해했다. 500m가량을 이런 식으로 차를 몬 아우디 운전자는 급기야 버스 앞에 차를 세우더니 차에서 내려 버스 기사 박씨의 멱살을 쥐고 머리를 때린 뒤 다시 차를 몰고 달아났다. 대낮에 도로 한복판에서 벌어진 보복 운전, 버스 기사 폭행 사건이다.

지난달 26일엔 서울 구로구의 대학병원 구내 도로에서 택시끼리 끼어들기와 경적 시비가 붙어 추격전을 벌이는 사건도 벌어졌다. 이날 오후 1시 45분쯤 영업용 택시 기사 송모(53)씨가 병원 구내 도로에 정차 중이던 이모(54)씨의 개인택시 앞으로 끼어든 게 발단이 됐다.

막 출발하려던 이씨가 깜짝 놀라 경적을 울리자 송씨가 "왜 경적을 울리느냐"며 이씨 차량을 뒤쫓아 앞지르고서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이에 이씨가 송씨를 제치려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자 송씨가 다시 추격에 나섰다. 두 차량은 액션 영화에서나 나올 만한 밀어붙이기를 시도하다가 사이드미러가 부서졌다. 경찰은 이씨와 송씨를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경찰이 지난달 15일 보복 운전에 대한 특별 단속에 들어간 이후 지난 13일까지 한 달 남짓 동안 591건이 적발됐다. 경찰이 특별 단속을 하고 있는데도 하루 21건꼴로 보복 운전이 적발되고 있는 것이다. 경찰 단속에 걸리지 않은 경우까지 따지면 보복 운전 숫자는 훨씬 더 될 것이란 게 경찰의 이야기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운전자 10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운전자의 40.6%가 보복 운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을 정도다.

이 조사에서 보복 운전을 당한 사람들은 그 이유로 '내 차가 앞에서 천천히 갔기 때문'(51.8％)을 가장 많이 꼽았다. '내 차가 앞으로 끼어들었기 때문'(43.8％), '내가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31.3％)이라는 응답이 그 뒤를 이었다. 보복 운전을 해봤다는 운전자들도 '상대방 때문에 사고가 날 뻔했기 때문에'(63.8%), '상대 차가 앞으로 끼어들어서'(37.3%), '상대 차가 양보하지 않아서'(18.9%), '상대가 경적을 울리거나 전조등을 번쩍여서'(18.9%) 등의 이유로 상대 차를 위협하는 운전을 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도로 위에서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분노 조절 장애형 운전자들이 도로를 무법천지로 만드는 것이다. 14일엔 서울 강동구 길동 한 도로에서 시내버스가 다른 시내버스를 상대로 보복 운전을 하다 시비가 붙어 기사끼리 서로 치고받는 싸움이 벌어졌다. 출발 신호로 바뀌었는데 앞에 있던 버스가 빨리 출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뒤에 있던 버스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해 앞지르기를 하다가 추돌 사고까지 냈다. 이 사고로 버스 승객 1명이 다쳤다.

이런 보복 운전은 심지어 끔찍한 인명 사고까지 낳는다. 지난해 9월 경기 의정부에선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로를 변경해 자기의 진로를 방해했다며 시비를 벌이다 상대 운전자를 차로 치어 전치 8주의 중상을 입힌 일도 있었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성격이 급하거나 스트레스가 많다고 응답한 사람일수록 보복 운전을 한 경우가 많다"며 "다른 차량이 경적을 울리거나 추월을 하면 무시당했다고 여기는 운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