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끔 다니는 병원의 의사는 철학박사이다.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계속 공부를 하여 한미 양국에 의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여의사이다. 어느 날 병원에서 대기 중에 약력을 보니 철학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평소 철학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 그 여의사와 진료가 끝날 무렵 평소 생각하던 궁금한 사항에 대하여 몇 가지 여쭤보았다.
그날따라 방문환자가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쾌히 대화에 응해 주셨다.
첫 번째 철학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성철 스님의 선 사상에 관한 연구’ 이었다고 한다. 나는 성당에 다니지만, 과거 직장 생활하던 시절 여름휴가 때 아내와 정해놓지 않고 차를 타고 무작정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성철 스님의 생가를 들리게 되어 그곳에서 아주 인상적인 글귀를 읽고 고매한 스님임을 알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분에 대해 깊이 연구한 철학자를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당시 스님께서 나를 깨우쳐 준 한마디 말씀은 “나에게 가장 악한 짓을 한자는 나에게 큰 은혜를 베푼 사람이다.” 라는 아주 역설적인 글귀였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말씀이라고 그냥 넘겼는데 그 귀 절을 음미할수록 그 깊은 의미가 마음에 와 닿았다. 성철스님은 선의 대가로 이미 해탈의 경지를 선을 통해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 핵심인 것 같았다.
사람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가? 하는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너무 밑도 끝도 없이 여쭤보면 원하는 답을 얻기 힘들 것 같아 평소 내가 책에서 읽고 생각하던 이야기를 먼저 말씀드렸다. 인간은 자신을 Upgrade 시켜 보다 고매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데 박사님 생각은 어떠신지 물어본 것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불교의 윤회사상까지 말씀해 주셨다. 즉 인간의 60%가 영적으로 부족한 면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삶을 살 때 자신을 갈고닦아 영혼을 고매하게 하지 않으면 다시 세상에 태어날 때 동물에 가까운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돼지를 닮은 모습으로 태어나서 마치 하는 행동도 돼지와 비슷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가 삶을 사는 동안 지속해서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한동안 대화 후에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 번째 질문은 여자들의 입덧에 대한 것이었다. 역시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의학적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답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책 속의 답처럼 철학적인 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임신하게 되면 서로 다른 영혼이 만나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즉, 뱃속의 아이와 엄마가 영적으로 비슷하면 입덧이 비교적 적은 데 비해 만일 영적으로 많이 다른 경우 심하게 고생한다는 것이다. 철학의 세계는 정말 신비롭고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것 같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서 시간이 나면 선과 명상을 통해 우주의 빛을 대면한다는 고매한 철학자를 만나 그 바쁜 와중에서 시간을 할애받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 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너의 영혼을 찾으라는 의미라면 바쁘고 정신없이 보내는 삶의 와중에 모처럼 영혼의 대화를 나눈 것 같아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오늘은 온종일 맘이 훈훈하였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