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지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의 나라 미얀마(Myanmar). 1983년 10월 9일 북한 요원이 외교순방 중인 우리나라 대통령 일행에 대한 폭탄테러로 참상을 빚었던 그 나라, 아직도 버마로 부르는 것이 익숙하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 미얀마는 남한 면적의 일곱 배쯤 된다는데 인구는 우리와 비슷한 6,000만 명쯤이라고 한다. 외부세계와 단절이 많았던 탓에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그래서 '아시아의 마지막 숨겨진 보석'이라고 한다. 낯설지만 순박한 곳, 척박하지만 그만큼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땅, 불교문화가 그 어느 나라보다 오롯이 남아 있는 땅.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회의 다섯 번째 해외답사 일정으로 미얀마를 다녀왔다.
4박 6일의 답사여행
인천공항에서 양곤까지는 약 6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에 우리와는 2시간 30분의 시차가 있다. 3월에 벌써 낮 기온이 35도를 넘어서는 무덥다. 미얀마 여행 추천서에 보면 최단기 코스 4박 6일 동안은 양곤, 바강, 만달레이, 인레호수를 하루씩 추천하는데 우리는 문화유적 답사에 비중을 두어 인레호수를 빼고 만달레이에 하루를 더 투자하기로 하였다.
▲4박 6일 일정은 양곤 도착(1박)- 바강(1일/1박)- 만달레이(2일/2박)-양곤(1일/무박)으로 진행하였다.
한국 - 미얀마 직항은 현재 대한항공 단독취항인데 시간이 밤 비행기밖에 없어서 부득이 4박 6일이 되었다. 대략 2,430마일의 거리를 날아갔는데 지도를 보니 한국 내에서는 서해안으로 목포까지 남하해서는 제주를 거쳐 중국내륙으로 방향을 바꾸어 상하이, 광저우 등을 지나 베트남 하노이와 태국 치앙마이를 거쳐 미얀마의 양곤까지 날아가는 비행로를 보이고 있다.
▲비행기 좌석 화면에 표시된 양곤까지의 비행경로.
대부분의 국제여객기가 양곤으로 IN OUT 하지만 미얀마의 수도는 더는 양곤이 아니다. 2005년 미얀마의 군사정부는 양곤에서 북쪽 322Km 떨어진 삔마나로 천도하면서 수도 이름을 네피도로 바꾸었고 군사작전처럼 수도를 옮겼지만, 아직도 많은 외국인은 양곤으로 출입국하고 있으며 각국의 대사관 등은 여전히 양곤에 머물고 있다.
미얀마 불교문화의 정점, '바강(Bagan)'
바강은 미얀마 불교의 정점이자 하이라이트이다. 오래전 2세기경 타무다릿왕이 아리맛다나푸라 국을 세웠던 바강은 1506년 아노라타왕이 젊은 승려 '신 아라한'에 의해 불교에 귀의하게 되면서 상좌불교(소승불교)를 채택하였으나 나라에 경전이 없어 인접한 따톤 왕국의 마누하 왕에게 불경 필사를 요구하나 거절당하자 전쟁을 일으켜 따톤 왕국을 점령하였고, 필사를 거부했던 마누하 왕과 탑 기술자들을 데려와 바강지역에 불교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워 지금의 바강을 만들게 된다.
1287년 몽골의 쿠빌라이 칸이 침공할 때까지 왕성한 사원건축과 불교 상징물 조성은 계속 이어졌으며 196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들어가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이때 약 5,000개의 사원이 추정된다고 하였으나 현재 3,122개로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1975년 바강을 휩쓴 지진으로 많은 파손으로 이후 계속되는 복원과 복구가 진행 중인 곳이 바강이다.
양곤에 도착하여 입국 절차를 거치고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이미 현지시각 밤 11시. 차량을 수소문하여 호텔까지 이동 후 다음날 새벽 6시 비행기를 타려니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밤 비행기의 아쉬운 점은 이렇게 첫날밤은 잠자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날 새벽 4시 30분에 모닝-콜을 받아 일어나 간단히 씻고, 다시 공항으로 달려갔다. 호텔에서 아침 대신 종이 도시락을 싸주었는데 빵 2개와 바나나 1개가 전부인, 아주 간단한 아침이다. 호텔 1박에 아침 식사가 포함되어 있어 이후 계속 새벽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비슷비슷한 종이 도시락을 건네받았다.
미얀마 국내선 비행기로 양곤을 이륙, 바강까지는 약 50분이 소요되는데 그래도 비행기 안에서 호텔에서 준 것과 비슷한 종이 도시락을 기내식처럼 내어주는데 역시 빵이 3개 들어있었고, 이와 함께 물, 커피, 사탕 등을 나눠주는 등 생각보다 친절하고 상냥한 편이었다.
바강 공항은 매우 수수하여 시골 버스정류장 느낌이었으며, 화물 수송도 인부들이 손수레를 이용하여 수동으로 작업하는 곳으로 비행기에서 내려 걸어서 건물까지 이동하여 기다리면 인부들이 여행 가방을 가져와 나눠주는 아주 소박한 공항이다. 그래도 양곤-바강 구간은 항공권에 좌석 번호가 지정인데 이후 만달레이, 양곤으로 이어지는 국내선은 자유석이었다.
공항에서 짐을 찾아 나서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은 바강지역 문화유적 관람료 성격의 입장권을 끊는 일이다. Bagan Archaeological Zone(바강 고고학 유적지대) 입장료인 셈인데 무려 25,000 짯(Kyat)으로 매우 비싼 편이다. 미얀마 화폐단위 짯(Kyat)은 달러와 대략 1,000:1 환율로 우리나라 원화와 1:1쯤으로 생각하면 사용하기 편하다.
국내에는 미얀마 화폐가 없어서 미국 달러로 환전해간 후 미얀마에서 다시 현지 화폐로 환전해야 하는데 그 나라 특징이 달러 지폐가 빳빳한 새 돈이 아니면 안 바꿔 주거나 환율이 떨어지는 시스템인지라 참 이상하였다. 그런데 그들 자신의 돈은 아껴쓰질 않아서 매우 더럽고 지저분하여 직접 손으로 잡기가 쉽지 않았으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바강 공항에서 구매한 입장권(좌측) 25,000짯이다. 오른쪽은 만달레이 지역 입장권인데 10,000짯으로 비교적 적절한 금액이다. 사실 바강이나 만달레이를 돌아다녀도 누가 표를 보자는 사람은 없는데 어쩌다 주요사원이나 큰 시설 등에서 보자 할 때가 있다. 이때 입장권이 없으면 낭패인데 바강은 5일간, 만달레이는 일주일간 유효하다고 씌어있다.
이렇게 입장권을 구매 후 공항을 나오니 아직 8시도 안 된 이른 아침,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달려갔다. 역시나 이른 시간 체크-인은 불가하다 하여 우리 짐을 로비에 맡겨놓고 오늘 여행복장으로 간단하게 정리 후 첫날 답사를 시작하는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우리를 태우고 바강 전역을 돌아다닐 마차였다.
▲바강지역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마차, 호스카라 부르는 아주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탈 것들이다.
이처럼 바강지역 투어 수단은 고전적인 마차가 제격인데 2인당 마차1대로 온종일 투어에 25,000짯을 요구한다. 마차는 일명 호스카(horsecar)라고 하는데 마부들은 대부분 영어로 소통할 수 있으며 지역 내에 약 240대의 마차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스쿠터 대여업이 성행하고 있어 마차는 사양산업이라고 하며, 외국인 단체여행객들은 여전히 버스 편으로 다니고 있었고 배낭여행이나 자유여행 온 젊은이들은 스쿠터나 자전거 등을 이용하여 간편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불편하고 엉성해 보여도 마차 투어로 첫날 바강지역을 온종일 돌아보기로 하였다.
▲바강지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핵심구역인 올드바강과 주민이주 등으로 신거주지가 형성된 뉴바강이 있으며, 그 중간쯤은 민가바 지역으로 상대적으로 적지만 흥미로운 유적지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밖에 공항이 있고 여행자들이 선호한다는 냥우지역과 그 아래 민난뚜지역이 있는데, 우리는 마차투어의 특성상 원거리는 어려워 민가바 - 올드바강 지역 위주로 돌아보기로 하였다.
레미엣나 파토(Laymyethna Phato)
호텔은 뉴바강지역에 있어 마차를 준비하고 나서니 약 8시경, 먼저 민가바 지역부터 돌아보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온 줄 알고 마부들이 먼저 안내한 곳은 일명 코리아 파고다로 불린다는 레미엣나 파토(Laymyethna Phato)였다. 바강지역이 1975년 큰 지진으로 많이 파괴되고 손상되었는데 이곳 레미엣나 파토는 한국 조계종에서 기부하여 복원한 곳이라서 안내판도 한글로 씌어있고 간단한 한글 설명 판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코리아 파고다로 불리는 레미엣나 파토, 작고 단정한 규모의 건물로 앞에는 한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상주하는 관리인은 없으나 간단한 그림 등 상품을 파는 이들이 머물며 청소도 하고 손님 안내도 한다. 2001년 복원하기 전까지는 무너진 벽돌과 잡초들로 폐허 상태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미얀마 사원들이 그렇듯이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 벽의 사면에 불상을 모시는 형태로 되어 있으며, 4대 성지를 뜻하는 부처의 탄생, 깨달음, 첫법륜, 열반의 모습을 새겨놓았다. 이 사원을 참배하면 4대 성지를 다 돌아본 셈이라고 한다.
▲입구 중앙에는 부처가 깨달음을 맞이하는 모습, 항마촉지인의 익숙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니 왼쪽 면에는 전법륜인이라고도 불리는 설법인을 한 모습, 초전법륜의 부처님이다.
▲계속 돌아가니 뒷면에는 열반하신 부처님 모습, 와불이 모셔져 있다.
▲동쪽 면에는 부처의 탄생을 새겼는데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출생하는 모습이며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함께 서 있다.
첫 순서로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마부는 제법 센스가 있어 보였다. 한국인임을 고려하여 한국에서 지원, 복원한 곳을 먼저 보게 한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 탓인지 영어도 비교적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고 성실하게 우리를 안내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일행 10명을 태운 5대의 마차는 흙먼지를 날리면서 다음 사원으로 향하였다.
구벼욱지 (Gubyaukgyi) 사원
아직 올드바강에 이르지 못한 우리는 휴식도 취할 겸 민가바의 마을 입구에 있는 구벼욱지 사원을 두 번째로 들렸다. 이 사원은 짠시타 왕이 아들이 아닌 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왕이 되지 못한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세운 사원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사원 외벽의 조각들이 매우 아름답고 정교하여 몇몇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한 눈으로 보아도 외벽 구석구석이 정교하고 세밀하다. 창문도 하트와 크로바를 연상하는 연속무늬로 장식하였으며 창문틀 위쪽이나 기둥 모서리 부분, 지붕 받침 등 어느 하나 소홀한 곳이 없다. 1113년에 지었다고 하니 어언 대략 900년이 넘은 셈이다.
이 곳은 민가지역인지라 사원 앞 나무그늘에는 여러 개의 노점들이 늘어 서 있고, 마실 것과 조금 조악해 보이는 팔찌, 목걸이 등 기념품을 팔고 있었는데 우리 관심은 미얀마 사람들이 얼굴에 바르는 것이 무엇인가였다. 알고 보니 '따나카(thanaka)'라는 나무토막을 돌판에 물을 뿌리며 갈아대면 나오는 물기 있는 가루를 얼굴에 바르는 것이었다.
▲시장에서 따나카 나무토막들을 쌓아놓고 팔기도 하는데, 우리는 잔돈 조금 집어주고 발라 달라 했다. 따나카를 가는 모습.
과거 미얀마의 베익따노 왕국 왕비가 애용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바르는 선크림처럼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고 피부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하여 우리도 기꺼이 발라보는 체험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