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드추진課 발로 뛰며 세일즈 인형옷 입고 오사카 시내 활보… 美·유럽 돌며 명함 100만장 뿌려 잘 모르던 시골서 유명 지자체로
- 주민 수익 증대 치밀한 계산 캐릭터 상품에 로열티 받는 대신 구마모토産 농산물 쓰도록 유도 주민들 "구마몬은 우리의 보물"
최인준 특파원
"구마몬짱, 단죠비 오메데토!"(구마몬, 생일 축하해!)
지난 14일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현의 현청 소재지인 구마모토시 쓰루야 백화점 7층. 1100㎡(약 330평) 강당을 가득 메운 시민 500여명이 무대 위 검은색 곰 모양 인형의 율동을 따라 하며 환호했다. 농사로 먹고살던 인구 180만의 구마모토현을 일약 전국에 이름난 지자체로 키운 일등공신, 이 고장 캐릭터 '구마몬'의 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였다. 구마몬은 곰을 뜻하는 '구마(熊)'와 사람을 뜻하는 현지 사투리 '몬'을 합친 말이다. 나가시마 가즈히로(47)씨는 "구마몬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고장 보물"이라고 했다. 행사장 뒤쪽으로는 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구마몬의 탄생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일을 도맡았던 구마모토현청 '브랜드추진과' 공무원들이었다.
◇공무원이 일군 '1조원 기적'
지난해 구마몬 캐릭터가 부착된 상품 매출은 1007억엔(약 1조500억원)이었다. 2011년 첫 출시 이후 4년 만에 1조원을 돌파했다. 일본에서도 지자체 캐릭터는 4000개가 넘을 만큼 넘쳐나지만, 대부분 시작만 요란할 뿐 의미 있는 매출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구마몬도 출발은 비슷했지만, 공무원들의 남다른 노력이 더해지며 '대박'을 터뜨렸다. 구마모토현은 규슈신칸센 완전 개통을 기념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민간업체에 홍보 캐릭터 제작을 의뢰했다. 구마몬 출시 첫해 캐릭터 상품 매출이 25억엔(약260억원)을 기록하자, 가바시마 이쿠오 구마모토현 지사와 공무원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현청은 구마몬 디자이너에게 500만엔(약 5200만원)을 주고 판권을 사들였다. 곧바로 전담 부서인 '브랜드추진과'를 신설해 캐릭터 세일즈에 뛰어들었다.
이미지 크게보기구마모토현 대표 캐릭터 구마몬(가운데 검은색 곰 모양)의 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14일 일본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의 쓰루야 백화점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파티에서 구마몬을 비롯한 구마모토현 내 지역 캐릭터들이 시민 500여명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구마모토현 제공
경영·마케팅 전공자 한 명 없는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브랜드추진과 공무원들은 마케팅 책과 씨름하며 토론을 이어갔다. 그렇게 나온 첫 작품이 일명 '오사카 실종 사건'이었다. 현청 공무원이 인형 옷을 입은 채 예고 없이 오사카 시내를 활보하게 한 뒤 트위터에 "구마몬이 가출했으니 찾아달라"는 글과 사진을 올려 시민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가바시마 지사도 기자회견을 열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전역과 미국, 유럽 등을 돌며 뿌린 홍보명함만 100만장이 넘었다.
유명세를 탄 구마몬은 한 해 TV 프로그램 출연 1000회, 트위터 팔로어 44만2000명(지자체 캐릭터 1위)에 이를 만큼 '국민 캐릭터'가 됐다. 47개 지자체 인지도 조사에서 하위권이던 구마모토는 2014년 18위까지 상승했다. 구마모토현 브랜드추진과는 지난해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로부터 '기적을 일으킨 조직 100'에 선정됐다.
◇캐릭터 무료로 쓰게 했더니 더 이익
구마모토현에는 구마몬 캐릭터 사용 문의가 매달 수백건씩 들어온다. 하지만 사용료 수입은 제로(0)다. 4년 전 캐릭터 출시 이후 '노 로열티'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캐릭터 수입을 포기했느냐"는 비난도 들었지만, 전체 수익은 오히려 늘었다. 사용료를 안 받았더니 전국에서 문의가 쏟아졌고 그만큼 더 빨리 캐릭터를 알릴 수 있게 됐다.
대신 구마몬 캐릭터를 상품에 사용하려는 기업에는 조건을 제시한다. 구마몬 이름을 단 빵을 팔려면 구마모토산(産) 밀가루를 일정 비율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식이다. 가장 혜택을 본 건 역시 구마모토현 농민들이었다. 지난해 구마몬 관련 상품 매출(1007억엔) 중 식품(835억엔) 비율이 가장 높았다. 나루오 마사타카 브랜드추진과 과장은 "구마몬 상품 매출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구마모토 농가 소득도 올라 세수 증가 효과까지 보는 셈"이라며 "무료로 구마몬을 사용해 매출이 오른 기업 중에선 구마모토현에 수백만엔씩 기부하기도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