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23 10:15

리뷰 | 뮤지컬 꽃순이를 아시나요

"이 생애 못한 사랑, 이 생애 못한 인연.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뮤지컬 꽃순이를 아시나요의 엔딩 곡 '인연'이 객석을 숙연하게 만든다. 꽃순이의 가슴 속 연인인 첫사랑 춘호는 오랜 시간 먼 길을 돌아서 흰머리의 노인이 되어 있는 꽃순이를 등에 업고 있다. 꽃순이를 업은 춘호와 춘호의 등에 업힌 꽃순이는 노년의 모습이 되었으나 춘호가 업고 있는 꽃순이는 노년의 꽃순이가 아니다. 젊은 날의 가슴 설레던 고교생 춘호의 마음이 오랜 시간 춘호를 담고 있던 소녀 꽃순이의 마음을 업고 있는 것이었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 가는 꽃순이에게는 언제나 젊은 날의 첫사랑 춘호가 남겨져 있다.

뮤지컬 꽃순이를 아시나요
사진=은세계씨어터컴퍼니 제공
기억의 상실로 자신의 존재를 잊어도 결코 잊지 못하는 인생의 단 한 사람이 치매환자들에게는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정신과 의사에게 들은 적이 있다. 꽃순이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한사람 춘호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가면서도 놓지 못하고 그 기억의 끈을 잡고 고스란히 남겨져서 삶의 의미가 되고 있다. 첫사랑 춘호의 존재가 무대의 엔딩 장면에 내리는 꽃비처럼 꽃순이의 애달픈 삶에서 꽃비가 되어 살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하지 못했었으나 언제나 우리는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야. 나의 마음속에 늘 함께 하고 있었으니까.” 치매환자가 된 꽃순이에게 춘호가 하는 말이다.

가수 김국환의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시작으로 '동백 아가씨', '사랑이 지나가면' 등 우리의 젊음과 함께 흘러갔던 노래들은 5060세대와 2030세대의 감성까지 수용하면서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가슴을 찌르는 아픔으로 우리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함께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최근 모든 사람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였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처럼 세대를 다 함께 수용하는 노래와 느낌이 객석에서 무한대의 기류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재능 많은 연극인이 모여서 삶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한 소녀 꽃순이의 인생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시대적 변화를 노래로 자연스럽게 펼치고 있었다.

우리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 꽃순이는 지난 시절의 모든 연인의 대명사로 인식되던 예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세대 모든 젊은 오빠들의 연인이었던 꽃순이의 첫사랑 춘호는 모든 성장기 소녀들의 마음속의 오빠이며 대한민국의 발전과정에서 꼭 필요한 존재들로서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환호하면서 살아온 현재의 노년들이 살아온 삶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보이지 않는 힘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젊음과 인생의 이야기들에 스스로 삶을 묻고 살아가는 춘호와 꽃순이의 젊음이 그 기억을 되돌려주고 있었다. 객석 어디에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 시간대쯤에서 함께 하는 공감의 시간이었으리라 생각되었다.

고달프고 힘든 시간에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힘이다. 말은 언어로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아간다. 서로가 교감하는 마음은 말이 없어도 진실의 연결 고리가 되어준다. 마음이 지니고 있는 진실은 오염되지 않은 원시의 습관처럼 익숙한 느낌으로 자리하여 함께 하지 않아도 함께 하고 있었다는 춘호의 표현처럼 교감의 기류를 지닌 견고함으로 서로의 삶을 지탱하여주는 힘의 원천이 되어 준다. 때로는 말 없음이 말보다 더 깊숙한 언어가 되어주기도 하고 비워감으로 그 빈 공간을 더 가득 채워주는 밀도로 하얀 도화지가 지닌 여백에서만 가능한 상상력으로서 꿈의 존재감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꽃순이의 고단한 삶에서도 사랑이라는 꿈이 존재하여 지탱이 가능한 시간이다. 마음으로 함께 하는 시간마저 서서히 퇴색되어 사라지는 인생의 황혼기에 가슴에 가물한 기억들에서도 잊히지 않는 첫사랑 춘호가 주었던 꿈은 꽃순이의 인생에 분홍의 꽃비로 남아 있었다. 함께 할 수 없는 사랑이어도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으로 그 삶이 서럽지 않을 수 있음이다.

"우린 함께 할 수 없었어도 항상 마음이 함께 하고 있었어. 이제는 내가 너를 지켜줄게"

치매환자가 되어 첫사랑 춘호의 등에 업힌 꽃순이의 머리 위로 꿈같은 분홍의 꽃비가 내린다. 사랑은 그래서 아프고 서럽고 때로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일까.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