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두 '정의의 사도'의 맞짱… 근데 왜 싸우는 거지?

한국의 10대들이 "마징가 Z와 태권 V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궁금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 수십년간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 해묵은 궁금증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영화가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감독 잭 스나이더)이다. 개봉을 하루 앞둔 23일 현재 예매율은 74.7％. 누가 이기든, 이 싸움은 초반 흥행에 이미 성공했다.

'정의의 사도'인 배트맨과 슈퍼맨이 서로 치고받는 이유는 둘이 생각하는 정의와 이를 지키는 방식이 달라서다. 외계인 출신 슈퍼맨은 신(神)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을 목격한 배트맨은 악당을 잡아 낙인을 찍고, 필요하면 고문도 한다. 배트맨이 슈퍼맨을 경계하는 이유는 '모든 힘은 타락한다'고 믿어서다. 슈퍼맨은 어둠속을 배회하는 배트맨이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고 비난한다. 마침 슈퍼맨이 여자 친구를 구하는 와중에 민간인이 희생되면서 둘의 갈등은 깊어진다.

김윤덕 기자는 "이 영화는 '어벤저스'처럼 황당무계한 만화 같지 않아 볼만했다"고 일단 엄지를 올렸다. 문제는 "영화 시작 1시간이 지나도록 줄거리를 파악 못 하고 헤맸다"는 점이다. "맥락 없이 튀어나오는 퍼즐들을 맞춰보려 대사 한마디, 장면 하나 놓치지 않으려 기를 썼건만 영화가 끝나고도 의문 투성이"였다. 김 기자는 "나이 탓"이라 자조했지만, 순전히 영화 탓이다. 인과관계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캐릭터에 강약이 없으니 2시간 40분짜리 영화가 삐걱거린다. '다크나이트'를 '내 인생의 영화'로 꼽는 양지호 기자는 "스토리 라인이 허술한 데다 이를 만회할 만큼 배트맨과 슈퍼맨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했다. 변희원 기자도 "악당 비서가 자주 등장해 꽤 중요한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맥없이 죽더라. 쓸데없는 데 힘을 많이 빼니 영화가 산만하다"고 했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서로를 증오하며 싸우는 이유도 끝내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변 기자는 "정의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게 생사를 걸고 싸울 일인가?"라고 물었다.

'슈퍼맨이 대변하는 선(善), 그것은 절대 불변하는가?'라는 화두는 흥미로웠다. 양지호 기자는 "언젠가 타락할지 모르는 '외계인'에 대한 인간의 감정이 경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보다 늘 좋은 판단을 내린다고 알려진 AI에 자유 의지를 헌납한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비슷한 종류"라고 했다. 하지만 변희원 기자는 "질문만 좋으면 뭐하냐, 그걸 제대로 풀지도 못하면서.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배트맨과 슈퍼맨이 '어머니'란 세 글자 앞에 무너지며 모든 갈등을 봉합하는 장면은 진짜 허무하다"고 했다.

아이맥스 3D로 영화를 관람한 세 기자는 영상과 음악은 '어벤져스'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탁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윤덕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듯 슈퍼맨의 등장을 연출한 장면에 입을 딱 벌렸다. 악당 렉스 루터에 대한 상찬도 이어졌다. 변 기자는 "제시 아이젠버그는 이 캐릭터를 명민하지만 우울하고 잔혹한 인물로 탁월하게 묘사했다"고 평했다.

양지호 기자는 '원더우먼'에 열광했다. 영화가 슬슬 늘어질 때쯤 전격 등장해 장내(場內)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에 열광했던 김윤덕 기자 생각은 달랐다. "그 말라빠진 몸으로 밧줄을 던지고 칼을 휘두르니 초대형 괴물에 흠집이 날 리 없다. 린다 카터를 능가할 배우를 선택했어야 한다"며 씁쓸해했다. 진짜 비극은 배트맨이다. 벤 애플렉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은 백악관에 그를 배트맨으로 기용하지 말라는 청원까지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양지호 기자는 "크리스천 베일의 날렵한 배트맨 대신 거구의 벤 애플렉은 한 마리 곰처럼 스크린 속을 뛰어다녔다"고 했다.

영화는 끝내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심오한 질문을 던져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슈퍼 히어로 둘과 악당의 힘겨루기에만 매진하다 길을 잃는다. 2억5000만달러(순제작비)를 들인 싸움에서 패자는 바로 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