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그는 결혼전 '디지털 장의사'부터 찾았다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서울의 한 사립대 4학년 정모(여·24)씨는 최근 온라인에 올린 글과 사진을 지워준다는 업체를 찾았다. 정씨는 지난 3년간 반(反)정부 성향의 글 수백건을 포털 사이트나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 올렸는데 이런 글 때문에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겁이 난 것이다. 정씨가 시위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는 사진 수십 장도 온라인에 떠돌고 있었다. 정씨는 "기업 인사팀에서 지원자의 인성을 파악하기 위해 SNS를 검색한다는 말을 듣고 며칠간 잠을 못 잤다"면서 "전문 업체에 50만원을 주고 문제가 될 만한 기록을 모두 삭제했다"고 말했다.

인터넷이나 SNS에 올렸던 게시물을 없애기 위해 온라인 기록 삭제 전문 업체(디지털 장의사)를 찾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정씨처럼 취업문이 막힐 것을 우려한 대학생부터 결혼을 앞두고 헤어진 옛 애인과 주고받은 낯 뜨거운 대화를 지우려는 사람들까지 온라인 흔적을 지우려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배모(28)씨는 최근 한 여경(女警)이 고등학생이던 12년 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때 가해자를 옹호했던 글 때문에 수난을 겪는 것을 보고 서둘러 전문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배씨는 "철없을 때 온라인에 쓴 욕설이 번뜩 떠올랐다"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도 '공무원 자격 논란'에 시달릴까 봐 미리 흔적을 지우려는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 기록 삭제 업체인 산타크루즈컴퍼니 김호진(47) 대표는 "5년 전만 해도 연예인이나 동영상 유출 피해자 등이 암암리에 삭제 의뢰를 해왔는데 요즘은 평범한 사람들이 전체 고객의 절반에 이른다"며 "국내 기업 인사 담당자의 70%가 지원자의 SNS를 들여다본다는 한 취업 포털의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되면서 취업 준비생들의 문의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온라인 흔적을 삭제하는데 드는 비용은 수십만원이 보통이지만 삭제할 정보의 양이 많고 중요한 내용이면 수백만원에 달하기도 한다. '디지털 장의사'는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발표한 5년 내 부상할 신(新)직업 37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20여 개 업체가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가 성행하면서 포털 사이트에 게시물을 삭제해달라는 요청도 급증하고 있다. 2014년 네이버에 접수된 삭제 요청 건수는 33만7923건으로 5년 전보다 4배 이상으로 늘었다.

하지만 삭제 요청을 한다고 해서 온라인 기록을 모두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삭제 요청을 접수한 포털 사이트 측은 우선 30일간 게시물 노출을 중단하는 임시 조치를 취하지만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다시 게시물을 노출한다. 지난 2014년 서울의 한 병원이 네이버·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에 "병원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의료 사고'가 뜬다"며 관련 기록을 없애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심의를 맡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해당 검색어는 공공의 이익과 깊은 관련이 있다"며 삭제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국내에도 '잊힐 권리'가 법제화되면 온라인 흔적에 대한 삭제 요청은 더 늘어날 것"이라며 "온라인 게시물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쉽게 퍼질 수 있는 만큼 쓸 때부터 신중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장의사

고객 의뢰를 받고 인터넷이나 SNS에 올라 있는 글과 사진, 동영상 등 각종 게시물을 지워주는 서비스를 대행하는 온라인 기록 삭제 업체를 말한다. 삭제 의뢰를 받으면 온라인 게시물을 수집한 후 고객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고객 대신 각 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