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戰 후 보름… 이세돌이 돌아온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기의 '면벽(面壁) 대결'을 치렀던 이세돌이 보름 만에 다시 바둑판 앞에 앉는다. 30일 벌어질 제17회 맥심배 8강전 김지석(27)과의 일국이 이세돌(33)의 '인간세계 복귀전'이다. 이 9단은 전 세계의 폭발적 관심 속에 지난 15일 끝난 알파고와의 5번기서 1대4로 석패한 바 있다.

이번 김지석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많다. 최대 초점은 이세돌이 기계와의 대결서 경험했던 이질감, 두려움, 고독감, 그리고 뜻밖의 패배가 안겨준 충격으로부터 벗어나 옛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당시 홀로 거대 기계문명과 맞서 분투하는 이세돌의 모습에 뜨거운 갈채가 쏟아졌지만, 당사자는 처음 경험하는 대국 환경에 엄청난 고투를 감내해야 했다. 알파고와의 대결 종료 후 "상대가 인간이었다면 초반 열세로 몰린 뒤에도 그처럼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그가 자신의 두뇌 회로를 또 한 번 재정비(reset)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승부사로서 이세돌도 매우 중요한 길목을 맞고 있다. 올해 그의 전적은 10승 7패다. 비공식 기록인 알파고전 1승 4패를 더한다면 11승 11패에 머물고 있다. 연초 비중 높은 대국들이 몰렸다곤 하지만 이세돌에게 승률 5할은 미흡한 게 사실이다. 특히 천적으로 꼽히는 중국 커제(柯潔)에게 제2회 몽백합배 결승, 하세배, 농심배 최종국 등 주요 대국서 연패하며 통산 2승 8패로 밀린 상황이다. 커제 및 알파고에게 연패당한 충격에서 벗어날 돌파구가 절실해졌다.

하지만 이세돌은 바둑계에서 멘털이 누구보다 강한 기사로 꼽힌다. 지난 2009년 6월부터 반년간 기사직을 휴직(休職)했을 때 무더기 기권패 등 최악의 시기를 겪고도 복귀하자마자 파죽의 24연승 속에 세계 제패(제2회 비씨카드배)를 이룬 바 있다. 이세돌은 "다음 달 중순 시작되는 제8회 잉씨배 등 올해 3~4개의 국제 대회 우승에 도전하겠다"며 "알파고전 후유증은 없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김지석은 간단한 상대가 아니다. 한국 랭킹 2위 이세돌이 5위 김지석에게 통산 13승 9패로 앞서 있긴 하지만, 최근 10국만 보면 오히려 김지석이 7승 3패로 우세하다. 마지막 대결이었던 2015 바둑리그서도 김지석이 이겼다. 김 9단은 "나는 세돌이 형과 알파고의 대결을 누구보다 열심히 지켜봤던 사람"이라며 "복귀 첫 상대란 점을 의식하지 않고 담담하게 맞설 생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세돌 대 김지석전 승자는 4강에 선착해 있는 박영훈과 결승 진출을 다툰다. 또 목진석 대 원성진전(29일) 승자가 강동윤과 준결승에서 만나게 됐다. 우승 상금 5000만원이 걸린 맥심배에서 이세돌은 최다 우승(4회)을 기록 중이며 최철한(3회), 박영훈 및 박정환(2회)이 뒤따르고 있다. 커제와 알파고란 두 '괴물'에게 연거푸 상처받은 이세돌이 또 한 번 오뚝이 기질을 보여줄까. 그러려면 김지석이란 첫 장애물부터 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