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 패션, 서울 오다

가수 마돈나가 1990년 '블론드 앰비션 월드 투어' 때 '콘브라'(고깔 모양 브래지어)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 순간, 그는 더 이상 팝스타가 아니라 섹시하면서도 강인한 현대 여성을 대변하게 됐다. 그해 마돈나는 '보그' 뮤직비디오에서 같은 옷을 입고 나와 자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마돈나와 콘브라는 20세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마돈나의 콘브라를 만든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64)의 디자인 인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 '장 폴 고티에'전(6월 30일까지)이 서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장 폴 고티에는 전위적이면서 섹시한 의상을 선보여 '패션계의 악동(앙팡 테리블)'으로 불리는 디자이너다. 1976년 기성복을 만들면서 패션계에 입문한 고티에는 1997년 오트 쿠튀르 하우스를 창립했고, 2003년부터 7년간 에르메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했다. 영화 '제5원소'(감독 뤼크 베송) '나쁜 교육'(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의상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 전시에는 150점이 넘는 오트 쿠튀르 의상과, 1976년부터 2016년 사이 디자인한 기성복이 전시되며, 그가 어릴 적 영감을 얻은 문서·영화가 공개된다. 또 마돈나, 카일리 미노그 등 세계적 팝스타와 영화감독, 댄서들과 장 폴 고티에가 만난 협업 스케치, 무대 의상, 영화, 패션쇼, 비디오 클립 등도 볼 수 있다.

전시는 관람자가 소화하기 벅찰 정도로 많은 작품을 선보인다. 그저 옷가지가 많다는 얘기가 아니다. 인종·성별·문화 간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꾸준한 시도 덕분에 전시 작품도 고전(古典)과 펑크(punk), 정글과 사막 등 시대와 지역을 종횡으로 오간다. 전시장에 걸린 의상은 '예쁜 옷'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과 문화를 패션이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25일 기자회견에서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원래 용도가 아닌 것으로 상상해볼 때 아름다움을 뽑아낼 수 있다. 아름다움은 틀에 박힌 어떤 것이 아니다"고 했다.

고티에는 한국에서 여는 아시아 최초 전시를 기념해 한복을 자기 스타일로 재해석한 의상을 선보였다. 고티에를 상징하는 콘브라와 줄무늬를 한복에 그대로 적용했는데, 다소 무성의한 인상을 주는 게 안타깝다. 전시 의상을 입힌 마네킹 중 30여 개는 3D 프로젝션을 얼굴에 비춰 마치 마네킹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구현했다. 전시장 초입 장 폴 고티에로 변신해 그의 목소리로 작품을 설명해주는 마네킹은 놓치지 말자.

이전 DDP에서 무료로 열린 샤넬·디올전과 달리 이번은 유료 전시다.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21로 열린다.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 어린이(만 7~12세)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