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 산 황산, 경찰서까지 들고와 뿌렸다

30대 여성이 경찰서 건물 안에서 유독 물질인 황산을 뿌려 경찰관 4명이 최고 3도의 화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4일 오전 8시 45분쯤 경찰서 3층 복도에서 박모(44) 경사 등에게 황산을 뿌린 전모(여·38)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박 경사는 얼굴과 목 등에 2~3도 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3도 화상은 피부는 물론 내부 피하지방층까지 손상돼, 원상회복이 힘든 상태를 의미한다.

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황산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작년 하반기에 발생한 4건의 염산 테러도 대부분 피의자가 인터넷이나 화공약품점에서 별 어려움 없이 유독 물질을 구입했다. 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유독 물질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 취재 결과, 서울 시내 일부 화공약품 판매점은 구입자의 신원 확인 같은 인증 절차를 지키지 않고 유독 물질을 판매했다. 인터넷에서도 3분이면 아무런 인증 절차 없이 염산이나 황산을 살 수 있었다.

◇사상 초유의 경찰서 내 황산 테러

경찰에 따르면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0분쯤 "민원이 있다"며 관악서 사이버수사팀을 찾았다. 전씨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과도를 꺼내 들고 책상을 발로 차며 경찰관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박 경사는 과도를 뺏은 뒤, "나가서 얘기하자"며 동료 3명과 함께 전씨를 복도로 데려갔다. 이때 전씨가 가방에서 황산이 든 보온병을 꺼내 박 경사의 얼굴에 뿌렸다. 제지하려던 동료 경찰관 3명도 얼굴·손목 등에 화상을 입었다.

전씨는 지난 2013년 "스토킹을 당했다"며 전 남자친구를 관악경찰서에 고소했지만, 경찰이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하자 이에 불만을 품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경사는 당시 이 사건과 관련해 전씨에게 상담을 해준 인연이 있다. 전씨는 지난 2월 자신이 살던 원룸 건물 1층 유리창을 깨뜨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다시 박 경사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전씨는 "(담당자에게) 얘기를 잘해달라"는 취지로 1주일에 2~3차례씩 박 경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박 경사는 청탁 전화를 부담스러워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날 오전에도 전씨는 박 경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박 경사가 "사무실에 와서 얘기하자"고 해서 전씨가 경찰서로 오게 됐다고 한다. 전씨는 이날 경찰서 1층 안내데스크에 "박 경사를 만나러 왔다"고 했고, 별다른 제지 없이 3층으로 올라왔다. 경찰 관계자는 "전씨가 과거 친절하게 상담을 해줬던 박 경사를 자신의 변호인처럼 생각했는데,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범행을 벌인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은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한 뒤 전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3000원이면 누구나 구입 가능

환경부는 지난해 10월 한 오픈마켓에서 35%의 고농도 염산이 거래됐다는 논란이 일자, 범죄에 이용될 소지가 있는 유해화학물질을 온라인에서 팔 수 없도록 주요 오픈마켓 운영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청소용으로 쓰이는 농도 10% 미만의 염산은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별도의 인증 절차 없이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본지가 인터넷 포털의 쇼핑 사이트에서 관련 검색어를 입력하자 1100여 건의 염산 제품이 검색됐다. 한 인터넷 사이트는 농도 9.9%짜리 염산 500㎖를 2900원에 팔고 있었다. 구매를 완료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분이었다. 이혜숙 가톨릭대 약대 교수는 "순도 10%의 염산·황산이면 철이 녹고, 피부에 직접 뿌리면 3도 화상을 입을 수 있다"며 "3000원이면 테러에 쓸 수 있는 유독물질을 아무 제재 없이 구할 수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화학물질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염산·황산 등 유해 화학물질을 판매하는 화공약품점은 구입자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구입자의 성명·주소·전화번호와 구입 물질의 종류·양 등을 기록해 3년간 보존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본지가 서울 종로·을지로 일대의 화공약품점 8곳을 방문 조사한 결과, 2곳은 이러한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고농도 염산·황산을 판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