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서 만난 歌客, 알고보니 '딸바보'

시작은 '아빠 김광석'이다. 진달래 만개한 십여년 전 어느 봄날, 딸 서연이를 목마 태운 김광석이 관객을 응시한다. "사랑을 했는데요. 얼마 전에 마누라 말고…. 그냥 좋더라고요. 아침마다 같이 눈 뜨고 그랬는데 계속 보고 싶어요. 우리 딸내미 하고요." 장난기 어린 나직한 그의 목소리에 "푸훗" 객석이 출렁인다. 1993년 7월 어느 소극장의 라이브가 2016년 4월의 오디오 가이드를 타고 흘러나온다. 1980~90년대 김광석의 노래와 함께 청춘을 보낸 이라면, 입구에서부터 마음 촉촉해질지 모르겠다.

20년 전 우리 곁을 떠난 가수 김광석이 공연장이 아닌, 전시장에 들어왔다. 김광석이 남긴 노래와 각종 자료 등 300여점의 유품을 전시한 추모전 '김광석을 보다: 만나다·듣다·그리다'전이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김광석이 1000회 넘게 라이브 공연을 했던 대학로 초입의 전시장이다.

김광석과 초·중등 동창인 화가 이택희씨가 기획한 전시로, 유년 시절부터 동물원 시절, 김광석 1~4집, 다시부르기 앨범 등 시간 순으로 8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김광석 특유의 성찰적인 가사들이 벽면에 붙어 있고, 곡마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그의 육성으로 설명이 나온다. '이등병의 편지' 앞에선 군대에서 사고로 죽은 큰형님 얘기가, '사랑했어요' 앞에선 비 오는 날 수퍼에 갔다가 이 노래 팬이 됐다는 1926년생 할머니 팬 얘기가 나온다. 모두 공연에서 직접 관객과 나눈 얘기를 발췌한 내용이다.

전시장에 빼곡히 걸린 자료들은 서른두 해 짧은 삶을 농밀하게 산 예술가를 증언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나의 노래')이라던 이 작은 음유시인(吟遊詩人)에게 노래와 글은 한 몸이었다. 한 손에 쏙 들어가는 취재 수첩에 틈나는 대로 쏟아놓은 고뇌가 자필 악보 곁을 지킨다. 신문 기사 오류까지 잡아내 만든 그 시절 팬들의 스크랩북엔 요즘 네티즌 팬들에게선 보기 드문 정성이 가득하다.

김광석과 교우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는 것도 숨은 재미다. 가나다순으로 꼼꼼히 적은 전화기록부엔 임수경, 이은미 등 낯익은 이들의 이름과 집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김광석의 솔로 데뷔곡인 '너에게'를 만들어준 작곡가 김형석과 음악 동지였던 안치환의 앳된 얼굴도 흥미롭다. 삐삐와 공중전화카드를 기억하는 당신이라면, 카세트테이프의 추억을 공유하는 당신이라면 둘러봄 직한 전시다. 6월 26일까지. 문의 (02)837-6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