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치부 들키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재능이 모자라다 보니 죽어나는 게 시간이라 그만큼 긴 습작 기간에 재고(在庫)도 늘어났다. 1977년 대구매일 신춘문예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로 당선될 무렵 세 편의 중편과 아홉 편의 단편을 써 놓았을 정도였다. 그 이후 지금껏 발표한 50여편의 중단편을 전집으로 묶으면서 다채로움과 풍성함의 자족감 못지않게 반복과 변주의 치부를 들키는 듯해 민망하기도 하다."

소설가 이문열(68)씨가 중단편 전집(전 6권) 개정판을 민음사에서 냈다. 이씨가 1977년부터 2003년까지 쓴 중편 12편과 단편 39편으로 구성됐다. 2004년 아침나라 출판사에서 완간한 전집을 작가가 지난겨울 재교정을 보고 낸 결정본이다. 이씨는 "아침나라 출판사 대표의 사정이 어렵고 중단편집이 별로 많이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10여년 동안 인세를 전혀 받지 않았다가 2012년에 원고를 회수해 개정판을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이씨는 새 전집을 내며 일부 작품의 제목과 표현을 고치고, 단편 3편을 추가했다. 그는 "2003년 이후 단편을 한 편도 쓴 적이 없지만 앞으로 죽기 전에 단편 10편을 더 발표할 생각"이라면서도 "요즘 글이 잘 안 돼 결국 책 한 권이 안 될지도 모르겠으니, 이 전집이 어쩌면 내가 교정을 본 마지막 작품집이 될 수도 있겠다"고 했다.

전집엔 동인문학상 수상작 '금시조'와 이상문학상 수상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비롯해 미국 뉴요커지에 실린 '익명의 섬', 한 권의 책으로도 묶인 '젊은 날의 초상' 연작 3편 등이 수록됐다. 이씨는 1980년대 초기 소설에 얽힌 일화도 들려줬다. 전집 1권에 실린 단편 '필론과 돼지'(1980년 '필론의 돼지'로 발표)는 육군 제대병들이 귀향 열차 안에서 술에 취한 특전사 부대원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권력과 군중의 관계를 특전사 현역과 육군 제대병에 비유하면서 그 사이에 선 지식인의 입장을 그린 작품이었다. 발표 당시엔 특전사를 '검은 각반을 찬 현역'이라고 에둘러 묘사했다. 작가는 "1980년 광주 사태 이후였기 때문에 공수부대를 소설에 직설적으로 쓰기도 어려웠기에 '검은 각반'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며 "나중에 선집을 내면서 '검은 베레모를 쓴 현역'이라고 고친 게 이번 전집에도 반영됐다"고 밝혔다.

이씨가 1979년 발표한 중편 '새하곡'도 군대를 무대로 삼아 개인과 집단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그의 출세작 '사람의 아들' 초판본엔 부록처럼 실렸지만 3판부터는 빠졌다고 한다. 작가는 "나에게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지만 출판사가 압력을 느낀 모양"이라며 "그 소설은 한동안 어느 책에도 싣지 못하다가 1994년 중편소설집을 낼 때 수록했다"고 회상했다.

전집은 이문열 문학의 재조명도 제시했다. 각 권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평론가부터 1980년대에 태어난 평론가에 이르기까지 여섯 명의 필자가 이문열 문학을 재해석한 해설을 수록했다. 가장 젊은 평론가 허희(33)는 "이문열에게 붙어 있는 '보수주의자'라는 표식은 그의 작품에 내재된 함의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길을 가로막는다"며 이문열 다시 읽기를 제안했다. 평론가 류보선(54)은 "이문열은 전체주의적 국가 기관과 전체주의적 민주화 운동 세력이라는 두 검열관 모두와 쟁투를 감행했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