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미터기'로 택시 바가지요금 잡는다

#1. 지난달 서울 탑골공원에서 택시를 타고 상명대 입구에 도착한 홍콩 관광객 A씨는 택시 요금을 확인하곤 황당해졌다. 퇴근 시간대 길이 막히긴 했어도 예전 한국 방문 경험에 비춰 1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택시 미터기엔 요금이 1만3000원이 찍혔기 때문이다. A씨의 민원을 접수한 서울시 조사 결과, 택시 기사는 시내 주행인데도 A씨 몰래 '시외 할증' 버튼을 눌러 약 30% 부당 요금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2. 직장인 B씨(50)는 회식을 마친 뒤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자정을 넘겨 집 근처에 도착했지만 곧 신용카드가 든 지갑을 분실했다는 걸 알았다. 공교롭게도 수중엔 현금도 부족했다. B씨는 어쩔 수 없이 잠자던 아내에게 전화해 "택시비를 갖고 내려오라"고 부탁해야 했다.

이처럼 신용카드나 현금이 없어도 언제든 택시를 이용하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바가지요금'에 대한 걱정 없이 한국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이 올해 안에 마련된다. 택시 승객과 택시 운전기사가 각자 스마트폰에 깔린 요금 미터기가 동일하게 작동하는 것을 눈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고, 시내·시외 주행 여부를 자동 파악해 요금에 반영하는 것은 물론 결제까지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앱(App) 미터기'를 올 연말까지 전국의 일반 택시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국토교통부가 11일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음 달 중 일부 지자체와 시범 사업을 우선 실시해 미비점 등을 파악한 뒤 올해 안에는 전국적으로 앱 미터기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앱 미터기란 현재 택시에 설치된 '기계식 미터기'처럼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이 미터기의 역할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카카오택시블랙 등 일부 고급 택시에만 제한적으로 사용 중이지만 이를 일반 택시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작동 방식은 간단하다. 바퀴의 회전수를 바탕으로 거리를 계산해 요금을 매기는 기계식 미터기와 달리 앱 미터기는 GPS(위성항법장치) 위치 정보와 내장된 지리 정보를 통해 요금을 산정한다. 여기에 지자체별 시외 할증이나 야간 할증 같은 부가 기능도 앱 미터기에 자동으로 연동돼 택시 기사가 일일이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어진다.

승객이 자신의 스마트폰에 앱 미터기를 깔면 택시 기사의 스마트폰 앱과 승객들이 사용하는 앱에 동일하게 요금이 표시된다. 승객은 이동 경로 등이 상세하게 표기된 영수증을 받을 수도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앱 미터기는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중국어·일어 등으로 된 버전도 나올 것"이라며 "외국인의 경우 원화로 표시된 택시 요금이 자기 나라 돈으로 얼마나 되는지 즉각 알 수 있어 택시 요금을 둘러싼 의혹이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앱 미터기 사용 가능"

요금 결제 방법도 한결 간편해진다. 앱 미터기에 미리 신용카드 번호 등 정보를 등록해두면 스마트폰만으로 요금 결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자녀의 스마트폰 앱 미터기에 부모의 신용카드 정보 등을 기입하면 자녀도 언제든 스마트폰만으로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자녀가 언제, 어디서 택시를 타고 내렸는지 같은 '알림 정보'가 전송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카카오페이류의 '간편 결제 서비스'나 모바일 상품권 등을 통해서도 택시 요금 결제를 할 수 있도록 앱 미터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한국과 외국의 택시 앱 업체가 제휴를 시작하면 한국에서 쓰던 '앱 미터기'를 이용해 외국에서도 택시 요금을 확인하고 현지 통화로 결제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한국의 '카카오택시'와 중국의 차량 공유 업체인 '디디콰이디'가 제휴를 하면 양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국내에서 쓰던 앱으로 해외에서도 택시를 부르고 요금 결제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앱 미터기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한동안은 기계식 미터기와 함께 사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실제로 서울시에선 "기계식 미터기가 없으면 승객들이 불안해한다"는 이유로 앱 미터기를 사용하는 고급 택시에 기계식 미터기를 함께 설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없거나 스마트폰 사용이 서툰 승객에겐 혼란스러울 수 있어 기계식과 앱 미터기가 한동안 병행 사용될 것"이라며 "다만 앞으로 점차 택시를 타는 방식이 스마트폰 앱 호출로 바뀌어가면서 앱 미터기 사용이 자연스레 대세로 자리 잡을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