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우리, 超고위험 상품 넣고… 기업·신한은 '빈칸'

은행들이 11일 '일임형 ISA(개인자산종합관리계좌)' 상품을 일제히 출시했다.

국민만능통장으로 불리는 ISA는 저금리 시대에 정부가 새로 도입한 비과세 상품으로, 5년 동안 올린 수익 최대 200만원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준다. 지난달 출시됐는데, 금융위원회가 은행에는 신탁형 ISA를 팔게 하고 일임형 ISA는 당초 증권사에만 허락하려다 은행도 팔 수 있도록 막판에 결정했다. 이에 은행들은 '증권사에 밀릴 수 없다'며 일임형 ISA 준비에 박차를 가해 11일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일임형 ISA'는 투자자가 맡긴 돈을 은행이 알아서 굴려주는 상품이다. 이날 '일임형ISA'를 판매하기 시작한 은행은 국민·기업·신한·우리은행 등 4개 은행이었다. '일임형 ISA'를 판매하는 금융회사들은 투자 상품 꾸러미인 '모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시해야 하는데, 이 은행들이 극비리에 준비해 11일 '개봉'한 모델 포트폴리오는 은행별로 명확한 차이를 보였다.

국민·우리은행은 원금 손실 위험이 비교적 큰 상품까지 투자 상품 꾸러미에 편입한 반면, 기업·신한은행은 보수적인 은행 고객의 성향을 고려해 지나치게 위험한 상품은 빼버렸다. 금융위원회가 3개월 후 일임형 ISA의 수익률을 금융회사별로 공개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일임형 ISA의 최적 상품으로 꼽혔던 ELS(주가가 일정 범위<-40%~-60%>를 벗어나지 않으면 고수익을 얻고, 범위를 벗어나면 원금을 잃을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는 단기 수익률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자취를 감추는 부작용도 감지됐다. 수수료는 연 0.1(초저위험)~0.6%(초고위험)로 은행별 차이가 크지 않았다.

◇국민·우리 '다양', 기업·신한 '안전'

금융위는 일임형 ISA의 모델 포트폴리오를 원금 손실 위험도에 따라 5단계(초저위험·저위험·중위험·고위험·초고위험)로 나누도록 했다. 11일 일임형 ISA를 공개한 4개 은행은 위험도를 더 세분해 7~10개의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

국민은행은 '만능 ISA'라는 이름으로 초저위험부터 초고위험까지 가장 다양한 상품(10개 종류)을 구비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은행은 모델 포트폴리오 이름을 투자하는 상품군(群) 이름에 따라 달았다. 국·공채에 투자하는 '국공채 ISA', 국내 고배당주에 30%를 투자(나머지는 채권형 펀드)하는 '고배당 30 ISA', 배당주를 중심으로 국내 주식형 펀드에 나눠 투자하는 '국내 우량주 ISA' 등이다.

기업·신한은행은 초고위험 모델 포트폴리오는 '빈칸'으로 남겨뒀다. 두 은행은 모델 포트폴리오 수도 각각 7개로, 국민·우리은행보다 적은 편이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변동성이 큰 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초고위험 상품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투자 전략을 짜는 '로보 어드바이저'를 전면에 내세웠다. 모든 포트폴리오는 로보 어드바이저가 '밑그림'을 그리고, 인간 전문가들이 최종 결정을 하는 식으로 확정됐다.

◇수익률 공개 부담에 'ELS'는 배제

금융 당국은 오는 6월쯤 금융회사들의 일임형 ISA 수익률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들이 단기 수익률에 집착하느라 ISA에 다양한 상품을 담지 못하리라는 전망이 나왔는데,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은행들은 단기적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ELS 같은 파생상품을 모델 포트폴리오에서 모조리 뺐다.

ELS는 원래 비과세 혜택이 있는 국내외 주식형 펀드와 달리 ISA에 담았을 때만 비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ISA 최적합 상품’으로 꼽혔다. 실제로 신탁형 ISA 가운데 유일한 ‘완판’(판매 완료) 상품이 KEB하나은행의 원금보장형 ELS(ELB)일 정도로 투자자들의 관심도 크다. 그러나 이날 은행이 출시한 일임형 ISA에는 ELS가 하나도 담기지 않았다. A은행 ISA 담당 부행장은 “ELS는 ‘1년 동안 지수가 30% 내려가지 않으면 수익률 4%를 보장한다’는 식의 상품 특성상 단기 수익률 경쟁엔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일임형 ISA에 담기 부담스럽다”고 했다.

반면 ISA에 담아도 추가 비과세 혜택은 거의 없어 전문가들이 굳이 ISA에 담을 필요가 없는 상품으로 꼽았던 국내 주식형 펀드는 단기 수익률 올리기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4개 은행이 출시한 모델 포트폴리오 34개 중 26개에 담겼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재칠 펀드·연금실장은 “5년 동안 돈을 묶어 놓아야 하는 한국형 ISA의 특성상 3개월 수익률은 큰 의미가 없다. 투자자들도 단기 수익률만 보고 금융회사를 선택하기보다는 장기 수익률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임형 ISA가 출시된 첫날 가입자는 많지 않았다. B은행 관계자는 “지점별로 10명 이내의 문의 및 가입자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아직 금융회사별 수익률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점진적으로 가입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