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섬유 스크린에 펼쳐졌다, 이응노의 예술

검은 먹으로 그려진 '형상'들이 하얀 한지를 가득 채웠다. 점과 선으로 이뤄진 단순 기호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춤을 추거나 뛰고 있는 듯한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의 모습을 그린 고암 이응노(1904~1989)의 '군상'은 리드미컬하고 흥겨운 모습을 연출한다.

서양 작가 두 명이 동양 필묵에 현대적 감각을 결합한 이응노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했다. 프랑스 2인조 작가 르네 쉴트라와 마리아 바르텔레미, 그리고 이응노의 합동 전시인 '레티나: 움직이는 이미지'전(展)이 대전광역시 만년동 이응노미술관에서 6월 26일까지 열린다. '접시도안' 등 이응노의 대표작 및 컴퓨터와 과학을 이용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응노 작품을 재해석한 2인조의 작품 등 총 70여점을 함께 전시한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두 작가의 '센티멘탈 저니 2'〈사진〉는 형형색색의 실로 짜인 태피스트리 작품으로 이응노의 '군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소위 '세포자동자 이론'에 기반을 둔 프로그래밍으로 작은 사각형들을 규칙적으로 배치했다. 적·황·흑·백·청 등 5개 기본색이 48개 색으로 증식하며, 양쪽 사각형의 색 데이터 값을 더해 각각의 사각형 색채가 결정되는 식이다. '빅 크런치 마리앵바드'는 영화 '지난해 마리앵바드에서'를 250개의 픽셀과 그림 문자로 단순화시킨 영상을 광섬유 스크린 위에서 보여준다.

바르텔레미는 "이응노가 글자와 그림의 관계를 통해 패턴의 무한한 반복과 추상화를 보여줬다면 우리는 그것을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풀어냈다"고 했다. (042)611-9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