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어부' 고발한 집념의 여기자들

두 여기자는 야음을 틈타 보트를 타고 조업 중인 트롤 어선에 접근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로부터 3000㎞나 떨어진 벤지나섬 인근 해상의 고기잡이 배에는 처참한 '노예 어업'에 내몰리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을 인터뷰하고 있을 때 성난 보안요원들의 배가 들이닥쳤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여기자들은 '노예 선원'들이 알려준 묘지를 찾아나섰다. 그곳에는 노예 노동자 60여명의 주검이 묻혀 있었다.

동남아 노예 어부들의 실상을 끈질기게 추적해 미국인의 밥상에 오르는 동남아산 해산물의 유통 경로를 밝힌 AP통신 집념의 여기자 4인방이 퓰리처상을 받았다. 미국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18일(현지 시각) 마기 메이슨, 로빈 맥도웰, 마타 멘도사, 에스더 투산 기자가 취재 보도한 '노예들로부터 온 해산물' 시리즈 기사를 올해 100회째를 맞는 퓰리처상 공공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공공 부문은 퓰리처상의 21개 부문 중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꼽힌다. 이들 중 멘도사 기자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주민 학살' 폭로 기사로 2000년에도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다.

이들은 1년 넘는 취재 기간 동안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등에서 꾐에 빠져 잡혀와 어선에 감금된 채 죽도록 일하던 노예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또 위성 기술, 선적 기록 등을 이용한 탐사보도 기법으로 노예 어부들이 벤지나섬에서 잡은 새우 등 해산물이 태국으로 실려간 뒤 가공돼 미국 내 월마트와 레드랍스터 같은 레스토랑 체인으로 유통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이들은 '기사는 곧바로 송고한다'는 AP통신의 원칙을 깨고 노예 노동자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관련 정보를 당국에 건네 노동자들의 안전이 확보된 뒤에야 뉴스를 보도했다. 이 기사 덕분에 노예 노동자 2000여명이 풀려났다.

한편 이날 발표된 퓰리처상 속보 부문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의 총격 사건을 보도한 LA타임스, 사진속보 부문은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지는 난민의 참상을 담은 로이터·뉴욕타임스가 공동 수상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대기를 다룬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은 드라마 부문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