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처럼… 거리에 부는 '잠옷 바람'

소매와 깃에 테두리가 있는 파자마 셔츠, 레이스가 달린 새틴 소재의 슬립 원피스, 벨트로 앞섶을 질끈 여미는 넉넉한 길이의 로브(실내에서 입는 무릎 아래 길이 가운). 잠잘 때나 입는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이들을 보고 "왜 자다가 그대로 나왔냐"고 놀라지 말자. 침대 밖으로 나온 잠옷 바람, '파자마 룩'이다.

◇파자마, 무심한 듯 멋스러운

잠옷 중에서도 파자마는 지난해부터 런웨이와 스트리트 패션 포토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파자마는 헐렁한 윗옷과 바지로 된 잠옷이다. 바지는 펄럭일 정도로 통이 넓고 셔츠는 목 아래서 V자를 그리는 옷깃과 테두리선이 특징이다. 올봄·여름 컬렉션에서 알렉산더 왕은 하늘색에 빨간색 테두리가 들어간 파자마 셔츠를, 돌체 앤 가바나는 꽃무늬 파자마 상하의를 선보였다.

패션계가 왜 파자마에 매혹을 느끼게 됐는지는 영화 '샤레이드'(1963)를 보면 알 수 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오드리 헵번은 짙은 파란색에 하얀색 테두리가 있는 파자마를 입고 등장한다. 이때 헵번은 편안하고 무심해 보이지만 흐트러졌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신경 쓰지 않았지만, 멋스러운 게 파자마의 매력이다. 파자마보다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로브나 슬립 형태의 잠옷도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다. 알렉산더 왕, 지방시와 캘빈 클라인은 긴 새틴 슬립을 원피스로 활용했다. 지난가을 열린 서울 패션위크 2016 봄·여름 컬렉션에선 로브와 슬립, 파자마를 응용한 의상을 내놓은 디자이너들이 3분의 1 이상이었다. 로브를 주력 제품으로 하는 국내 브랜드 로브로브는 원피스나 겉옷으로 활용 가능한 로브를 내놨다.

◇잘못 입으면 자다 나온 여자?

16일 방송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서 스타일리스트 한혜연과 디자이너 박승건은 최근 트렌드로 '파자마 룩'을 소개했다. 이때 모델 송해나가 수건 소재로 만들어진 한 벌의 노란색 파자마를 입고 등장하자 시청자들은 "태진아 같다" "(영화) 마스크 주인공 같다"며 혹평했다. 파자마 룩은 자칫 잘못했다간 집에서 자다 나오거나 병실에서 뛰쳐나온 사람 취급 받기 딱 좋기 때문에 진짜 잠옷처럼 아무렇게나 입을 수는 없다.

파자마는 셔츠와 바지 둘 중 하나를 택하면 소화하기가 한결 편하다. 런웨이에서는 위아래 한 벌로 입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따라 하기는 녹록지 않다. 파자마 셔츠의 인기에 일조한 공효진은 드라마에서 짙은 파란색 파자마 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인 제인 버킨은 이미 1992년 한 시상식에서 하얀색 파자마 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마리텔'에서 '나쁜 예'로 등장한 송해나는 청바지, 흰티와 함께 노란색 파자마 상의를 입으면셔 '좋은 예'로 변신했다.

로브 같은 경우는 트렌치 코트나 카디건 대신 가볍게 걸치는 옷이나 벨트를 꽁꽁 여며 원피스로 활용할 수 있으니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슬립이다. 몸매와 살갗을 많이 드러내는 이 옷은 섹시하다 못해 퇴폐적인 분위기를 낸다. 슬립 원피스 하나만 걸치고 다녔다가는 상당히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알렉산더 왕 같은 경우엔 슬립 원피스 위에 캐주얼한 재킷을 걸치고 운동화를 함께 신어서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중화시켰다. 셔츠나 티셔츠 위에 슬립을 입으면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으면서 경쾌함을 더할 수 있다. 단, 파자마든 로브든 슬립이든 캐릭터나 동물 문양이 들어간 것은 피하자. 그것이야말로 집에서만 입는 진짜 잠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