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가족 물밑접촉 옥시… "인과관계는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으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는 2001년 영국 생활용품 기업인 레킷벤키저가 동양화학그룹 계열사인 옥시를 인수해 설립한 회사다. 이번 사건 사망자 94명 중 70명이 이 회사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레킷벤키저는 1823년 공업용 화학물질 전문 업체 벤키저로 출발한 190여년 역사의 기업이다. 60여개국 지사에 3만6000여명의 직원이 있고 200여개국에서 제품을 판매한다. 작년 글로벌 매출은 88억7400만파운드(약 14조5500억원), 영업이익은 23억7400만파운드(약 3조8900억원)였다. 레킷벤키저는 지난해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선정한 글로벌 지속 가능 경영 100대 기업 중 7위에 선정됐다. 또 영국 리즈 경영대가 선정한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10위 안에 들었다.

레킷벤키저는 2011년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 5년간 한 번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한국 법인인 옥시레킷벤키저도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왔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피해자들이 소송을 내 법원이 조정 결정을 하면 합의금을 내고, 2014년 환경부와 협의해 '인도적 기금' 명목으로 50억원을 기탁한 정도였다.

문제가 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은 옥시가 2001년 한빛화학에 제조를 의뢰해 출시한 제품이다. 레킷벤키저는 그해에 옥시를 인수했다. 이 때문에 옥시레킷벤키저 측에서는 "회사를 인수할 당시 이런 (유해성) 문제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인수 초기여서 자신들은 제품 제조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수 전에 개발됐다 해도 자기 관리하에 판매를 한 이상 책임을 미룰 일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올 들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지난 21일 뒤늦게 사과문을 내놓았다. 옥시 측은 이 사과문에서 "좀 더 일찍 소통하지 못해 피해자 여러분과 가족분들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 드린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사 정책상 검찰 수사에서 제기된 여러 의혹 관련 행위들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며 혐의는 완곡하게 부인했다. 옥시 측은 지난해 검찰과 법원에 낸 의견서에서도 "황사, 꽃가루, 담배 등 제3의 위험 유발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피해자 가족을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한 피해자 가족은 "옥시 쪽에서 검찰 수사 전에는 1억~1억5000만원 정도에서 합의를 요구했지만 요즘은 2억~2억5000만원 정도를 합의금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2011년 실적 등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유한회사로 전환하기 전 마지막으로 공개한 2010년 실적은 매출 2438억원에 영업이익 209억원이었다. 옥시 측은 작년 매출에 대해서는 "3000억원 정도"라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에도 5년간 매출이 20% 이상 뛴 것이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살균 표백제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옥시크린', 제습제 시장 50%를 차지하고 있는 '물먹는 하마', 세계 1위 손 세정제인 '데톨' 등을 팔고 있다. 이 밖에 파워크린(세제), 쉐리(섬유유연제), 에어윅(방향제) 등 총 16개 브랜드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