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을 격려하는 응원가죠"

1970년대 최헌, 최병걸, 김훈과 함께 '트로트 고고(트로트 선율과 고고 리듬을 결합한 노래)의 4대 천황'으로 꼽히던 가수 조경수(68)씨가 최근 34년 만에 신곡을 냈다. 새로 나온 싱글 앨범에는 '훈장' '바로바로 당신' 등 4곡이 담겼다.

25일 강남구 논현동 카페 '랑데부'에서 만난 조씨는 "무대를 떠나 있던 동안에도 제가 뮤지션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나이에 앨범을 낸다고 팔릴까 싶었지만, 제 생활신조가 원래 '잘될 거다'예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견디다 보면 정말 되거든요." '랑데부'는 그가 13년째 운영하고 있는 라이브 카페다. 밤늦도록 손님들과 어울려 드럼 치고 기타 튕기는 그의 일터이자 놀이터다.

신곡 '훈장'은 중장년의 인생을 찬양하는 경쾌한 트로트 곡이다. 오승근이 부른 가요 '내 나이가 어때서'를 작사한 박웅씨가 "네가 부르면 어울릴 것 같다"며 제작에 앞장섰다. '아아아하~ 내 인생 후반전~ 멋지게 살아봅시다~ 가는구나 가는구나~ 멈추지 않고~.'

가사에는 그의 인생이 포개져 있다. 중학교 때 음악에 빠진 그는 미 8군 부대 무대에 서고 '정성조와 메신저스' '포가이스' 등 여러 그룹사운드를 거치며 베이스 연주자로 각광 받았다. 한대수의 히트곡 '물 좀 주소'에서 둥둥둥 깔리는 베이스 기타가 그의 연주다. 1976년 솔로 데뷔곡 '아니야'부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돌려줄 수 없나요' '행복이란'이 연이어 차트 상위에 올랐다. 번안곡 'YMCA' '징기스칸'은 어느 고고장에서나 들을 수 있는 히트곡이었다. KBS·MBC·TBC 방송 3사의 10대 가수상을 휩쓸고, TBC 최고가수상을 받았다.

화려한 전성기는 거기까지였다. 1980년대 초반 지인의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먹고살기 위해 일식집 주방장으로 들어갔다. 2000년에 귀국, 다시 풀리는가 싶던 인생은 그에게 대장암 3기 판정을 내렸다. 지독한 항암 치료를 거치고, 지금은 완치됐다. 초밥을 쥐고서도, 항암제를 맞으면서도 머리로는 악기를 연주했다. 기타, 대금, 하모니카 등 머릿속으로 불러내지 않은 악기가 없었다. '훈장'은 그 모든 걸 겪고 다시 노래로 돌아온 자신의 후반생에 불러주는 응원가이기도 하다.

40대 이상 세대에게는 '천황'이지만, 요즘에는 배우 조승우(36)의 아버지로 더 유명하다. 그의 젊은 시절 사진에는 조승우의 여린 듯 날카로운 콧날이 그대로 보인다. 그는 "아들의 모든 뮤지컬을 챙겨본다"고 했다. 최근작 '베르테르'을 보러 간 날은 "찾아가서 인사도 나눴다"고 말했다.

"너무너무 잘해요.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이번에 앨범 내는 건 얘기 안 했어요. 아버지가 아들 팔아먹으려 하는 줄 알까 봐 알리기 싫어요. 제겐 저의 길이 있고, 아들에겐 아들의 길이 있는 거니까요. 제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예요."

그에게 남은 꿈은 "좋은 사람끼리 뭉쳐서 콘서트 한번 해보는 것"이다. "58년 개띠 정도 '젊은' 나이면 바로 시도해보겠는데, 나이가 맘에 걸려요. 프로는 무대에서 초라해 보이면 안 되거든요. 제 나이가 그대로 보이면 팬들이 실망할 거니까요. 그래도 한 번쯤 젊은 친구들하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체력이요? 자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