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KB 등 '한국형 자산배분 펀드' 내놔

삼성, KB 등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한국 투자자의 특징을 반영한 '한국형 자산배분 펀드'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기존 글로벌 운용사 상품을 그대로 베껴서는 1%대 극한의 저리(低利)에도 좀처럼 은행 곁을 떠날 줄 모르는 국내 투자자들을 끌어모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JP모간, 프랭클린템플턴 등 외국계 운용사들이 한국 투자자의 특성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연간 투자 기대수익률은 여전히 두 자릿수 중반에 달할 정도로 세계 최고 눈높이를 가진 데 비해 위험 감내도는 매우 낮은 모순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투자 손실 가능성은 최소화하면서도 기대수익률을 최대한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 속속 나오는 중인데, 투자자들이 어떤 평가를 할지 주목된다.

◇신흥국 비중 높인 '한국형 자산배분'

KB자산운용은 최근 상장지수펀드(ETF)를 이용해 세계시장에 분산 투자하는 'KB글로벌주식솔루션펀드'를 출시했다. 이 펀드는 이제까지 나와 있는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와 달리, 미국 투자 비중을 낮추고 아시아 등 신흥국 투자 비중을 높인 게 특징이다. 기존 자산배분펀드는 대개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세계지수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지수는 미국 투자 비중이 50% 이상으로 지나치게 높은 반면 중국 등 한국인이 관심 많은 신흥국 비중은 3% 미만이다.

홍융기 KB자산운용 멀티솔루션본부 상무는 "한국 투자자들은 중국 등 변동성이 큰 신흥국 투자 비중이 상당해야 '제대로 된 자산 배분'이라고 느낀다. 기대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라며 "이런 공격적인 성향을 반영해 미국 비중을 20%대로 낮추고 중국과 인도를 합친 투자 비중을 미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KB자산운용이 이런 비중 배분을 바탕으로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1년간 가상으로 투자한 장기 성과를 추정해보니, MSCI ACWI는 연평균 4.3%, KB글로벌주식솔루션펀드는 10.4%의 수익이 나왔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수익률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

◇은퇴 다가올수록 주식 비중 낮춰

삼성자산운용은 미국 대형 운용사인 캐피탈그룹과 손잡고 한국형 연금펀드인 '타깃데이트펀드(TDF)'를 내놨다. 대략적인 은퇴 시점을 정하면 자산배분 프로그램이 알아서 주식·채권 등의 비중을 조절해 여러 펀드를 갈아타면서 운용해주는 '펀드오브펀드' 형식이다. 은퇴가 먼 젊을 때는 위험이 크고 기대수익률도 높은 주식 비중을 높이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안전자산인 채권 비중을 높이는 식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생애 주기에 맞춰 자동으로 자산을 배분하는 이런 형태의 펀드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국내에선 처음이다. 구성훈 삼성자산운용 대표는 "한국 투자자들이 미국 투자자 대비 돈벌이를 늦게 시작하는 반면 은퇴는 5년 정도 빠르다. 이에 비해 평균 수명은 더 길다"며 한국인의 생애주기 특성에 맞춰 자산 배분 프로그램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인의 평균적인 투자 위험 감내도가 낮다는 점 때문에 연령대별 평균 주식 투자 비중을 미국 상품 대비 확 줄인 게 특징이다. 2045년 은퇴를 가정한 20대 투자자의 경우에도 펀드 내 주식 비중이 최대 79%다. 은퇴 이후엔 주식 비중이 18%까지 줄어든다.

◇'현금'이 벤치마크인 펀드도 등장

JP모간자산운용은 돈을 잃지 않는 게 최대 목적인 '글로벌매크로펀드'를 작년 말부터 국내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주식·채권을 전체 자산의 70%까지만 담고, 나머지를 외환·원자재·파생상품 등에 분산 투자해 벤치마크(투자 기준)인 '현금'보다 좀 나은 수익률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거보다 위험 감내도가 낮아진 한국인의 특성에 맞는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