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사는 집… 쓰레기 보고 알까 겁나

"개인 쓰레기에 집 주소를 붙여 내라는 게 말이 되나요? 사생활 침해입니다."

지난 24일 수원시 영통구 주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누리꾼 A씨가 한 온라인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수원 영통구청이 다음 달 2일부터 시범 실시하기로 한 '쓰레기 봉투 실명제'에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쓰레기 봉투 속에 신용카드나 휴대전화 번호 등이 적힌 메모라도 있으면 범죄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 아니냐"면서 "쓰레기만 봐도 여자 혼자 사는 집인지 금방 알 수 있는데 이런 정책에 동참하라는 거냐"고 했다. 누리꾼 수백 명이 이 글에 공감하는 옹호 댓글을 달면서 쓰레기 봉투 실명제 논란은 인터넷상에서 뜨거운 이슈가 됐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개설된 '쓰레기 봉투 실명제 반대' 서명운동엔 4000명이 넘는 누리꾼이 참여했다.

영통구의 쓰레기 봉투 실명제 정책은 각 가정이나 업소가 배출하는 종량제 봉투 위에 주소를 적으라는 것이다. 사업자는 업소명과 주소를 모두 봉투에 부착된 스티커에 적어야 한다. 아파트와 개인 주택은 주민 이름은 적지 않는 대신 ○○아파트 ○동 ○호 식으로 상세 주소를 써야 한다.

영통구는 실명제를 도입하면 음식물 쓰레기를 섞어 버리는 일이 줄고, 분리 수거가 활성화돼 전체적인 쓰레기양이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분리수거를 지키지 않은 가구에 대해서는 폐기물 관리법 위반으로 10만~20만원의 과태료도 물릴 수 있다. 영통구청 관계자는 "쓰레기 실명제를 실시하면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분리수거를 철저히 할 것으로 본다"며 "주소를 쓰게 하는 것은 자기가 버린 쓰레기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행하기도 전에 주민들이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항의 전화를 하루 수십 통씩 쏟아내며 반발하자, 구청 측은 "시범적으로 한 달간 시행한 뒤 주민 의견을 반영해 전면 시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영통구가 쓰레기 실명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작년 수원시 4개 구 가운데 쓰레기 감축 실적이 가장 부진했기 때문이다. 구청 직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쓰레기 봉투 실명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강원 평창군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평창군에서는 작년 6월 진부면 주민들이 먼저 "쓰레기에 이름을 써서 내자"고 군청에 건의해 실명제를 시작했다. 예상 밖으로 쓰레기 감축 효과가 큰 것으로 나오자 지금은 군 전체로 확대됐다. 실명제 실시 이후 평창군의 쓰레기 배출량은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평창군은 실명제 스티커를 붙이지 않은 종량제 봉투는 5일간 수거하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나 재활용품을 함께 담아 버린 주민에겐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현재 쓰레기 봉투 가운데 85%가 실명제를 준수하고 있다. 평창군청 관계자는 "처음에는 주민들 사이에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었지만, 이제는 쓰레기가 줄어들고 동네가 깨끗해지는 것을 본 주민들이 더 만족해한다"고 했다.

이 정책이 항상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서울 광진구 구의2동 주민센터는 150가구를 대상으로 지난 2013년 6월부터 6개월간 '쓰레기 봉투 실명제'를 시범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라는 주민들 항의가 끊이지 않아 결국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