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못해도… 제주 해녀까지 흥얼거리는 노래가 히트곡"

홍안의 미(美)청년이 어느새 검게 그을린 베테랑이 됐다. 가수 이승철(50)은 올해 데뷔 31년째를 맞았다. 그 세월 동안 그는 부침 심한 가요계에서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다. 두 시간 공연 동안 미처 다 부르지 못할 만큼 히트곡이 쌓였고, 연말 공연 관객 수는 20년째 1~3위 사이를 오간다. 한국서 그보다 나은 성취를 이룬 가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26일 서울 강남의 녹음실에서 만난 이승철은 "요즘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빡쎄게' 돌고 있다"고 했다.

"신곡 나왔잖아요. 알려야죠." 이달 초 발매한 '일기장' 얘기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각종 디지털 차트에서 "100위 밖으로 '광탈(광속 탈락)'한" 노래다. 망한 것 아니냐고? 이승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봐요. 언제부터 우리나라 히트곡이 차트 1위 찍고 시작했나요? 빌보드 차트에서 1위로 데뷔한 히트곡 보셨어요?" 그는 "요새 차트 역주행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 같은데, 원래 히트곡이란 역주행하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지난 한 달간 그는 10여 개의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나갔다. "몇몇 가수가 폼 잡는다고 보기 멋있는 것만 하는 거, 저는 아니라고 봐요. 교통방송 섭외 들어오면 당연히 나가야죠. 버스·택시 기사랑 승객 숫자 생각해봐요. 수십만 명에게 제 노래 들려줄 수 있잖아요."

이승철은 "제주도 해녀까지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게 만드는 노래가 히트곡"이라고 했다. "그래서 라디오가 중요한 거예요. 라디오뿐 아니라 카페, 식당, 술집 등 어디서나 들려야 비로소 히트곡이 되는 거죠. 최근 2~3 년간 그런 노래가 있었나요?" 그래서 그는 힘닿는 대로 방송 프로그램 스케줄을 잡고 있다. 예전엔 마다했던 콘셉트의 프로그램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제 노래 중에 음원 차트 1위 찍은 건 딱 두 곡이에요. '긴 하루'랑 '네버엔딩스토리'. 근데 '네버엔딩스토리'도 3개월간 활동해도 안 뜨길래 활동 접자고 할 때쯤 유재석이 하던 방송에 나가면서 터진 거예요." '그런 사람 없습니다', '인연', '서쪽 하늘' 같은 노래도 1위 한 번 못했지만 들으면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히트곡이다.

신곡 '일기장'은 주로 걸그룹 노래를 만들었던 인기 작곡가 '용감한 형제'가 만든 노래다. 이승철과 전혀 안면이 없던 용감한 형제는 TV 예능에서 이 노래를 들려주며 "이승철 형님에게 꼭 주고 싶어 만든 곡"이라고 고백했다. 그걸 본 이승철이 곧바로 그에게 연락하면서 노래가 빛을 보게 됐다. "발라드곡을 써본 적이 없는 친구가 만든 곡이라 그런지 신선했어요. 그리고 후렴구에 어딘가 모르게 '마지막 콘서트'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맘에 들었죠. 그런데 녹음할 때 13시간을 해도 맘에 안 드는 거예요. 딸이 녹음한 걸 듣고 '왜 이렇게 구려'라고 타박을 주길래 아예 강원도 가서 사나흘 쉬고 와서 다시 녹음해서 딸의 칭찬을 들었죠(웃음)."

그렇게 꾸준히 신곡을 내고 바닥부터 훑는 홍보를 하는 것도 결국 공연을 위해서다. 대마초 사건 때문에 활동을 못할 때 그를 지탱해준 것도 공연이고, 최고의 보컬리스트란 평가를 받는 것도 최고 수준의 공연 덕분이다. 다음 달부터 시작될 전국 투어는 사실상 30주년 기념 공연이다. 작년 메르스 때문에 못했던 한까지 담아 준비 중이다. "무대 연출에만 10억원 넘게 들였다"는 그는 이날도 공연을 위한 믹싱과 연습 스케줄로 꽉 차 있었다. 공연 준비할 땐 술도 끊고, 닭가슴살과 과일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운다. 이날 인터뷰하면서 커피를 몇 잔 마셨지만, 그것도 공연 때는 마시지 않는다. "커피 마시면 목이 마르거든요." 노래 잘하는 비결의 70%는 타고난 것이라고 장담하는 이승철이지만, 나머지 30%는 스스로 채우고 있는 셈이다.

이승철은 최근 몇 년간 봉사나 대외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소년교도소 수감자들로 이뤄진 합창단을 이끌거나 독도 지킴이 활동에 나선 것 등이 대표적 예다. 스스로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그 선한 영향력도 다 꾸준히 히트곡 내고 좋은 공연을 해야 가능한 거예요. 가수가 본업을 못하는데 다른 이야기 하는 걸 사람들이 들어주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