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株 펀드' 5년새 반토막

삼성, 현대차그룹 등 우리나라 대표 그룹에 투자하는 펀드가 대규모 환매에 시달리고 있다. 규모가 가장 큰 삼성그룹주 펀드에서만 최근 1년 새 약 6200억원의 투자금이 떠나는 등 국내에 출시된 '그룹주 펀드'에서 한 해 동안 총 9000억원이 빠져나갔다. 그룹주 펀드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2011년 10조원(순자산 기준)이 넘던 덩치는 현재 4조2000억원대로 반 토막 난 상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유행처럼 등장했던 이들 그룹주 펀드는 한때 60%의 높은 수익을 안겨줘 인기 있는 재테크 수단으로 꼽혔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국내 대기업들의 성장판이 닫히고 미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수익률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핵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중국에 밀리고, 혁신적인 미래 먹거리는 발굴하지 못해 갈수록 투자 매력이 떨어지자, 투자자들도 더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지 않고 돈을 빼가는 것이다. 국내 시가총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표기업에 투자자들이 등 돌리는 현상 때문에 코스피 지수도 2000선 위를 뚫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

◇투자자들, "미래가 안 보인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와 제로인이 집계한 삼성그룹주펀드 순자산 추이를 보면 2011년 한때 7조2000억원에 육박했던 삼성그룹주 펀드 규모가 현재 3조4000억원대로 반 토막 났다.〈그래프 참조〉 그룹주펀드 중 규모가 1조원대로 가장 큰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2' 펀드의 경우, 2007년 설정 이후 4월 26일 현재 수익률은 -6.3%를 기록 중이다. 최근 5년간 수익률이 -29%, 연초 이후 수익률도 -3.6%다. 삼성전자, 삼성물산에 투자금의 10% 이상씩 투자하고 있고, 삼성화재, 삼성생명 ,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에도 빠짐없이 베팅하고 있지만 수익률을 끌어올려 줄 이렇다 할 효자 기업이 없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김효찬 삼성그룹주펀드 대표매니저는 최근 운용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작년 3분기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한 이후 공격적인 주주 환원정책을 천명하면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며 기대감을 보였지만, 주요 계열사 주가가 반짝 오르면 투자자들은 이를 환매의 기회로 삼고 떠나버리는 형국이다.

현대차그룹주 펀드 중 규모가 큰 '키움현대차그룹과함께' 펀드도 설정 이후 수익률이 -33%로 저조하다. 현대차그룹이 잘될 것으로 보고 투자한 사람들이 투자금의 3분의 1을 날린 셈이다. 한화그룹에 투자하는 한화그룹주펀드는 설정 이후 한 번도 설정액 50억원을 넘긴 적이 없어, 최근 자투리 펀드 정리 대상에 들어가 펀드가 구조조정 되는 굴욕을 당했다. 주요 대기업 대표 종목에 투자하는 'KB한국대표그룹주' 펀드나 '미래에셋5대그룹대표주' 펀드 등도 투자자들의 돈을 불려주지 못하는 형편이다.

◇5년 수익률 -20~-30% 수두룩… 지배구조 불확실성도 한몫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가 아닌 개별 종목을 사들이는 직접 투자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2013년 초 주당 157만6000원까지 오르며 '곧 200만원 시대가 온다'던 삼성전자 주가는 수년째 100만~140만원 사이를 답답하게 오가고 있다.

현대차 역시 2013년 26만원대를 기록한 이후 주가가 급격히 미끄러져 현재 15만원 허들에 장기간 갇힌 신세다. 최근엔 5년 만에 최악의 1분기 실적이 나와 '투자의견 하향' 사태까지 겪고 있다. 미래의 기업 이익을 반영하는 '거울'인 주가가 이들 기업의 불확실한 미래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삼성전자는 원천기술 확보 능력을, 현대차는 테슬라 등이 주도하는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의심받고 있다"며 "기존 대기업이 쇠퇴해도 구글 같은 신흥 강자가 출현한다면 우려가 덜할 텐데 이마저도 보이지 않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코스피 대형주 200개를 묶은 코스피 200 지수가 전체 코스피지수보다 수익률이 6%포인트 이상 나쁜 것도 대기업들의 부진을 반영하는 증거다.

2세에서 3세로의 경영권 승계 전환점에 선 주요 기업들이 주주들로선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깜짝 발표식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벌이고 있는 점도 투자의 걸림돌로 꼽힌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조사연구팀장은 "지난해 삼성물산의 사례를 보듯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주가 주주권을 제대로 보호받을 장치가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이들 기업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이끌어내기가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